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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Sep 07. 2021

My Way

구미에 자리한 단계 하위지 선생의 묘

자신만의 길을 걷는다는 것은 자존감과 함께 자신이 길을 만들어가고 주변의 모든 것에 휘둘리지 않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삶이라는 것이 어떤 것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자신만의 길을 걷는 것은 정말 쉽지가 않다. 우선 경제적인 것이 문제가 되고 조직에 있다면 그곳에 자신의 거처를 고민해야 한다. 자신의 가족이라도 있다면 더 고민이 될 수 있다. 

구미에 자리한 사육신중 한 명이었다는 단계 하위지 선생의 묘를 찾아가 보았다.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천장(天章)·중장(仲章), 호는 단계(丹溪)·적촌(赤村). 선산 출신인 하위지의 묘는 구미에 자리하고 있다. 세종대였던 1438년 식년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한 뒤, 집현전부수찬에 임명되었는데 이후 대사간의 직분으로 권세에 굴하지 않고 직언을 서슴지 않았는데 대신들의 실정을 적극적으로 공격하다가 왕과 대신들로부터 반격을 수없이 받기도 했다.  

비가 오는 날 단계 하위지 선생의 묘를 찾아가기 위해 이곳까지 찾아왔다. 아래에는 공원같이 조성이 되어 있다. 이곳에서부터 찾아서 올라가야 찾아볼 수 있다. 

한참 정도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는 걸어서 올라가야 묘가 나온다.  문종이 승하하자 벼슬을 그만두고 낙향하였지만 단종 때 벼슬길에 올랐다가 다시 수양대군이 왕위에 올라 그를 간곡히 불러 예조참판에 승진되었다. 그러나 마음은 단종을 향해 있었다. 

안쪽으로 오니 그의 묘소가 나온다. 세조의 녹(祿)을 먹는 것을 부끄럽게 여겨 세조가 즉위한 해부터의 봉록은 따로 한 방에 쌓아두고 먹지 않았는데 이는 사육신의 공통점인 모양이다. 지금으로 말하면 고위 공무원인데 돈을 주어도 쓰지 않고 한 통장에 쌓아놓고만 있는 것이다. 

이미 알고 있겠지만 단종 복위 운동으로 인해 사육신은 잡혀가게 된다. 하위지는 국문 과정에서 성삼문(成三問) 등이 당한 작형(灼刑: 불에 달군 쇠로 죄인의 맨살을 지지는 형벌)은 당하지 않았으나, 사육신 등 여러 절신과 함께 거열형(車裂刑)을 당하였다. 그가 처형되자 선산에 있던 두 아들 하호(河琥)와 하박(河珀)도 연좌(連坐)되어 사형을 받았다.

사육신의 대부분의 유허지와 묘는 찾아가 보았다. 하위지 선생의 묘는 이번이 처음이다. 하위지의 인생을 보면 흔히 말하는 자신만의 고집을 세우는 My Way가 아니라 자신의 신념에 따라 움직였던 것을 볼 수 있다. 자신의 한 몸을 조심히 해왔으며 자신의 지위를 드러내지 않았던 사람의 삶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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