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퍼즐
경수는 3일 전의 시스템 업데이트를 끝내고 오래간만에 휴가를 맞아 기차를 타고 여수로 가는 중이었다. 알고리즘이 만 번쯤 반복될 때 20초 정도 될 때가 있었지만 그건 동일한 명령이 있을 때나 가능했기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그럴 일도 없을뿐더러 내부에서 동작하는 방식을 알지도 못했다. 솔직히 말하면 전임자가 짜 놓은 프로그램을 모두 살펴보는 게 귀찮았고 빨리 휴가를 떠나고 싶었다.
여수에는 얼마 전 소개받은 여자가 있었는데 차분하면서도 독특한 전라도 억양이 매력 있었다. 그녀의 언니는 서울에 산다고 했는데 승무원이라는 이야기만 들었다. 좀 더 관계가 진척되면 함께 만나는 자리를 만들기로 했다. 그 여자 친구의 사투리는 그렇게 심하지는 않았는데 잠시 들려준 어머니의 사투리는 여수를 확실하게 느끼게 해 주었다. 여수의 케이블카가 자랑이셨는지 말하는 도중에 케이블카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물어보았다.
"여수의 해상 케이블카 타 봤소?"
"아니요. 전 아직 여수도 못 가봤는데요."
"그믄 집이 어디요?"
"저는 서울에 살고 있습니다."
"아 그렇구먼."
길지는 않은 대화였지만 여수에 오면 맛있는 것을 해준다는 이야기도 했다. 여수라는 도시는 바다라 먹을 것이 많지 않을까란 생각도 해보았다. 만나면 무얼 해야 하나라는 생각도 하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기대감이 들었다. 얼핏 여수의 개도라는 곳이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개도 막걸리가 유명하다고 하는데 이름이 무슨 개도인지 아무튼 개도가 있다고 하니 있겠지란 생각을 해본다.
고속으로 가는 열차에서 창밖을 쳐다보니 풍경이 주마등처럼 보이기도 했다. 옛날 어렸을 때는 철로와 철로 사이가 벌어져있어 덜컹거렸는데 그게 마치 추억의 멜로디처럼 연상되기도 했다. 예전에는 여수 하면 산 넘고 물 건너 가야 갈 수 있었는데 지금은 얼마 걸리지 않는다. 덕분에 지방 공기업에 있는 사람들 상당수가 주말이면 자신의 원래 집인 수도권으로 가게 되어 지방도시 공동화가 있다고 하지만 자신이 편한 곳에 있으려는 게 사람들 속성이 아닌가.
배가 출출해진 그는 일어나서 식당칸으로 갔다. 식당칸에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허기진 배나 목마름을 해결해줄 음료를 찾아서 와 있었다. 경수는 여행의 분위기도 느낄 겸 안주거리도 될 겸 요기가 될만한 음식과 맥주를 주문했다.
주문한 지 얼마 안돼서 음식과 맥주가 나왔다. 두 손에 음식과 맥주를 들고 창가 자리에 앉았다. 칠리소스와 머스터드 소스가 위에 골고루 뿌려진 소시지는 생각 외로 맛이 좋았다. 아마도 고기의 함량이 높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한입 양껏 베어 물고 소스와 갈려진 고기가 어우러진 맛을 만끽했다. 맥주의 캔도 땄는데 흰 거품이 위에 나오면서 맥주 특유의 맥아 향이 코를 찔렀다.
역시 맥주는 첫 모금이 가장 좋았다. 한껏 그 분위기를 만끽하고 있을 때 빠르게 달리던 기차에서 정적이 흘렀다. 10여 초 흘렀을까. 둔탁하면서도 날카로운 쇳소리가 바닥에서 올라왔다. 빠른 가속도가 적절하게 감속이 되지 않으면서 궤도를 이탈하기 시작했다. 어디서부터 인지 몰라도 중간에 끊어진 연결고리에서 탈선한 기차가 자갈 위를 미끄러져갔다.
그 객차 칸에는 경수가 있던 식당칸도 포함이 되어 있었다. 한참을 미끄러져간 끝에 나무에 부딪치고 멈춰 섰지만 내부는 충격으로 아수라장이 되었다. 온갖 신음 소리와 아직도 들려오는 것 같은 굉음이 들려오는 환상을 겪고 있었다. 경수는 지신이 살아있는지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몸을 의지대로 움직일 수 없는 건 분명해 보였다.
빠른 시간에 구조팀과 대응팀이 급파되고 수습을 하기 시작했지만 시간이 적지 않게 걸렸다. 전혀 문제가 생기지 않을 것처럼 보이는 사고의 원인을 밝히는 것도 쉽지 않겠다는 관계자의 전언도 있었다. 그날 사고에서 식당칸에 있었던 사람의 수는 17명이었다고 뉴스를 통해 발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