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는 누군가 Sep 28. 2021

오래된 거리

하시모토 사무실, 죽산면, 한 잔, 아리랑

토지가 일부 사람들의 전유물이며 심지어 조선시대에는 모든 땅은 왕의 것이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이건 내 소유의 아파트나 땅이라고 말할 수 있는 역사는 50년밖에 되지 않는다. 의식주중에 먹는 것과 집 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었던 때가 있었다. 산업이 발전하고 다양한 일자리가 생겨나면서 땅에서 경작하는 것이 유일한 길이 아닌 세상이다. 그래도 농업은 여전히 중요하다. 김제는 일제강점기에 엄청난 수탈이 있었던 곳이다. 그중에 땅의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많은 땅을 가졌다는 하시모토의 농장 사무실은 죽산에 남아있다.

하시모토 (橋本)같이 일본인들의 이름은 대부분 한자다. 그렇지만 한국의 이름의 뜻보다 단순하다. 하시모토는 그냥 다릿가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광복이 되고 나서 그 많은 재산을 놓고 가야 하는 심정은 어떠했을까. 미군정은 한 사람이 가지고 갈 수 있는 보따리를 제한하였다. 

일제강점기에 이곳에 온 상당수의 일본인은 일부를 제외하고 주류가 아니었다. 그들에게 일본 본토에서 기회를 얻지 못한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착취를 일삼으며 재산을 형성해나갔다. 하시모토가 이 땅에 들어온 것은 1906년이다. 죽산으로 거주지를 이전하여 1916년 5월부터 농장을 경영하였다.

옛날에는 이곳은 상당히 고급스러운 가옥이었을 것이다. 1931년 김제군 죽산면 죽산리 농장을 변경하여 법인 주식회사를 세웠는데 바로 하시모토 즉 교본(橋本)의 이름을 붙였다. 

지금 대기업이나 은행 등 상당수의 회사는 지주회사가 있다. 기업의 계열사를 중심에서 좌지우지하며 지배권을 가지고 있다. 그 지주회사의 출발이 바로 일본이다. 땅의 주인이라는 의미의 '지주'를 광복 이후에 기업을 확산해가면서 지주회사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저 금고를 보니 이제 곧 필요하게 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아마 이곳에 수많은 착취의 결과물이 쌓였을 것이다.  연구에 따르면 조선인과 일본인의 농업수입 격차가 1941년에는 96배에 이르렀다고 한다. 

죽산을 한 번 가보면 알겠지만 땅이 광활하다. 이 땅의 50% 이상을 하시모토가 소유했었다. 오는 9월 21일부터 10월 3일까지 김제 지평선 축제가 열린다. 온라인과 벽골제 및 시내권에서 만나볼 수 있다. 

전에는 없었던 작은 카페가 생로 생겼다. 죽산 아리랑 카페다. 아리랑은 일제강점기의 시대상을 그린 조정래 작가의 작품이다. 

음료를 주문하고 카페를 돌아본다. 글을 쓰는 사람은 필연적으로 어쩔 수 없이 글감옥에 갇히게 된다. 공간뿐만이 아니라 정신적으로 갇혀 있게 된다. 쉽지 않은 시간이지만 감내하면서 한계선에서 방황한다. 

아리랑은 4부로 되었으며 12권의 방대한 분량에 걸쳐 역사적으로 실재했던 사건을 다루면서 각 사회 계층을 대변하는 다양한 인물상을 보여주고 있다. 

항상 영화의 제목처럼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지만 (As Good As It Gets) 때론 자연을 보고 있노라면 반드시 필요한 욕망을 채우기 쉽게, 불 필요한 욕망은 채우기 어렵게 만들어둔 것을 알 수 있다. 때론 아마존 주식 1주보다 손에 놓인 청포도 에이드와 죽산면의 풍광이 더 직접적인 가치가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와호장룡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