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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Jun 29. 2016

곡성, 당신의 빈틈을 파고든다.

사람들의 믿음은 유리처럼 깨지기 쉽다. 

영화가 상영이 되는 내내 미끼들이 넘치는 영화 곡성은 개인적으로 생각만큼 흥미 있는 영화는 아니었다. 던지고 싶은 메시지는 많은데 그걸 위해서 많은 것을 넣었고 관객들에게 혼동을 주기 위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끊임없이 복선을 깔아놓았다. 


영화 속에 담긴 메시지는 명확해 보인다. 사람들은 너무 유약하고 아주 사소한 정보에도 쉽게 흔들린다는 점이다. 진실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고 자신이 믿고 싶다는 것을 믿는 존재가 인간이다. 특히 곡성에서 딸을 구하고 싶은 경찰 종구는 그런 인간의 특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한 시골마을에서 경찰일을 하고 있는 종구는 보는 시야도 좁고 아는 것도 많지 않지만 적어도 가족을 사랑하는 가장이다. 


시골마을이라서 큰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 곳에서 기묘한 사건들이 발생한다. 기묘한 사건들과 얽히기 시작한 것은 일본인이다. 왜 일본인은 대도시도 아니고 한적한 곡성의 허름한 집에서 머물기 시작한 것일까. 자신의 상식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종구는 우선 그 남자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 시작한다. 우연하게 벌어진 사건에서 만난 제정신이 아닌 것 같은 여자 무명이 툭하고 던지는 말에도 격하게 심경의 변화를 일으킨다. 

영화에서 명확하게 사실처럼 보이는 것은 종구의 딸인 효진이 정상은 아니라는 것이다.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효진을 보면서 그 뒤에는 무언가 이해하지 못할 힘이 작용하고 있을 것이라고 굳게 믿는 종구는 그것이 누구인지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무당인 일광에게 돈을 줘가면서 굿도 하기도 하고 자신이 직접 무기를 들고 일본인 외지인을 찾아 해결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실 곡성에서 범인이 누구인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영화를 보는 사람마다 해석은 달라질 듯하다. 아마도 누가 범인이다라든지 속았다든지 자신만의 해석을 내놓으면서 영화 곡성을 이야기했을 듯하다. 대도시가 아닌 곡성이라는 낯선 공간에서 벌어진 인간군상에 대한 일을 그리며 인간이 얼마나 유약한 존재인지 그리고 사람들의 왜곡된 시선이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그려내고 있다. 

신체는 시간이 지나면 자란다. 그러나 정신은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단단해진다던가 크지는 않다. 정신이 자라지 않으면 사람들은 아주 조그마한 충격이나 자극에도 쉽게 바뀌게 된다. 이 빈틈을 파고 들어오는 것 중 대표적인 것이 종교다. 미신적인 것에 매달리는 사람들을 보면 심적인 유약함이 자리하고 있다. 


피가 난무하고 공포스러운 장면도 연출되지만 이 장면들의 대부분은 종구라는 사람의 시각으로 볼 때 드러난 것이지 실상 그렇게 잔인한 장면은 많지 않다. 


곡성은 좋게 평가받을만한 영화라기보다는 그냥 아주 약간 색다른 시도를 했으며 편집이 그럴듯하게 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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