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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Oct 25. 2021

보원사지

이번에는 가을여행처럼 방문해보길..

어떤 곳을 가면 아늑한 느낌이 드는 곳이 있고 어떤  곳은 황량한 느낌만 주는 곳이 있다. 오래된 곳에는 오래되어 보이는 시간의 때가 켜켜이 쌓아 있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아무것도 없지만 마치 실루엣처럼 선이 그려지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시간의 힘이다. 보원사지는 백제시대에 만들어진 사찰로 검소하면서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면서도 사치스럽지 않은 백제의 길을 따랐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앞서 말했듯이 백제시대에 창건된 사찰인 보원사는 통일신라시대 화엄십찰 중 하나였으며, 고려시대에는 1000여 명의 스님이 수행할 만큼 대찰이었다고 한다. 이곳에서는 2021 보원사 산사 예술제의 일환으로 제11회 내포 가야산 산사 예술제 보원사지 복원 공모전이 열렸었다. 

‘보원사지 복원 공모전’은 당간지주, 석탑, 승탑 등의 위치를 고려해 대웅전과 강당, 요사, 고양 간 등의 전각을 배치하고 구성하는 것이 주요 내용으로 보원사 복원에 관심 있는 청소년 누구나 참여 가능하며 팀 출품도 가능하며 수상자는 10월 25일 발표되며 시상식은 10월 30일에 진행될 예정이라고 한다. 

보원사는 지금은 그냥 터만 남았다. 터만 남은 곳이지만 모두들 기억하는 것들은 있다. 현재 절터에는 5층 석탑(보물 제104호)·당간지주(보물 제103호)·석조(보물 제102호)·법인국사 보승탑(法印國師寶乘塔:보물 제105호)·법인국사 보승탑 비(法印國師寶乘塔碑:보물 제106호)가 남아 있다.

빈 공간에 우뚝 서 있는 돌로 된 당간지주가 이곳의 사찰로 들어가는 입구임을 알리고 있다. 

감나무 한그루가 보원사지의 한편에 과실을 뽐내며 유유자적하게 서있다. 보원사지의 면적으로 추정해보건대 보령의 성주사지와 함께 상당히 큰 사찰이었음을 한눈에 보아도 알 수가 있다. 

옛 기록에 따르면 '호산 록' -불우(佛宇)- 조(條) ‘보원사기(普願寺記)’를 보면 “보원사 경내에는 주전(主展)인 2층 고각법당(高閣法堂)과 부도전, 나한전, 탑비(塔碑) 등이 배치되어 있다…”

이렇게 넓은 곳에 자리했던 수많은 사찰의 건물들은 어디로 갔을까. 전해 내려 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보원사를 중심으로 99채의 암자가 있었는데, 가야산 정상에 백암사(百庵寺)를 지어 100채를 채우고 나자 100개 암자가 망하여 폐사되었다고 전한다. 

많은 것을 채우려는 것은 모든 것을 잃는다는 것과 맞닿아 있다. 세상에는 적당하게 조절한다는 것이 가장 어렵다. 자신이 어떤 선에 와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끊임없이 뒤를 돌아봐야 한다는 이야기가 와닿는다. 

높이 900㎝. 기단은 2중 기단으로 하층에는 사자상이, 상층에는 팔부중상이 얕은 부조로 조각되어 있는데 보물 제104호 지정이 되어있는 보원사지 5층 석탑은 사찰의 중심이다. 석탑과 일직선상 산비탈 아래에 신라 말 효공왕 때 탄생하여 고려 광종 때 입적한 법인국사(法印國師)의 탑비(塔碑)(보물 106호)와 팔각원당식 탑신(塔身) 기단에 연화문(蓮花紋)이 새겨진 법인국사보승탑(보물 105호)이 감실 속에 안치되어 있다고 한다. 

당간지주에서 우측으로 오면 물받이 용기로 사용되었던 높이 0.9m, 폭 1.8m인 하나의 돌로 만들어진 장방형의 석조(石槽)(보물 102호)가 있다. 

보원사지 석탑의 석조처럼 누구에게나 그릇은 있다. 그 그릇에 무엇이 담길지는 스스로가 결정하지만 한 번 담기 시작하면 그 속에 담긴 것을 바꾼다는 것은 쉽지 않다. 

새로운 것, 새로운 가치, 새로운 생각은 어떤 의미에서는 하나도 없다. 오래된 것이 새롭게 만들어지는 것뿐이다. 담기는 것이 현대식의 재료와 기술로 만들어질 뿐이다. 이제는 대부분의 가치들이 디지털로 옮겨가고 있는데 그것 역시 옛 것의 가치에 기반한 것이다. 옛 것의 가치를 아는 것은 지금 풍요로워질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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