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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Jul 03. 2016

잔예 : 살아서는 안 되는 방

저주는 끝나지 않았다. 

한여름이 되면 꼭 찾아오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공포영화이다. 여름의 더운 열기를 식혀줄 공포영화는 여름 단골손님이라고 볼 수 있다. 올여름에 찾아온 일본 공포영화 중 하나는 "잔예 : 살아서는 안 되는 방"으로 섬뜩한 장면이나 괴기스러운 소리도 별로 나오지는 않지만 잔잔하게 조여주는 느낌의 영화다. 


사람들은 어떤 좋은 곳을 가도 흔히 말하는 것이 있다. 아무리 럭셔리한 곳이라고 하더라도 집만큼 편한 곳은 없다는 것이다. 집이라는 공간은 가장 안전하고 편안한 공간이다. 그런 집이 가장 불안하고 목숨까지 위협할 수 있는 공간이라면 어떤 기분이 들겠는가. 영화 잔예는 그런 가정에서 출발한다. 


괴담 소설가로 독자들에게 주변에 있을만한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는 한 작가가 우연하게 섬뜩한 일이 발생하고 있다는 집에 대한 제보를 받게 된다. 그 집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그 집터에는 여러 사람이 살았는데 하나같이 그 끝이 좋지 못했다. 혼자 자취하는 것이 꿈이었던 쿠보(하이 모토 아이)는 새로 이사 간 집에서 이상한 소리를 듣기 시작하고 소설가와 함께 그 흔적을 찾아가기 시작한다. 


사람들이 괴담을 좋아하는 이유는 때론 정신적인 불안감과 공포를 추구하기 때문일지 모른다. 괴담을 전해주는 소설가이자 작가인  그녀는 그런 편지를 접할 때마다 묘한 기분을 느끼게 된다. 영화 제목으로 사용된 잔예는 한자어로 한국 사람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이름이다. 그래서 살아서 안 되는 방이라는 부제를 달아놓았다. 사람들은 가끔 궁금해한다. 내가 살고 있는 집에는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었을까라는 그런 궁금증 말이다. 

영화를 보면서 문득 궁금해졌다. 어떤 공간에서 억울하게 혹은 자살한 영혼이 있다면 그 원혼은 언제까지 지속될 것이냐는 것이다. 잔예에서는 그런 방은 살아있는 사람이 살아서는 안된다고 말하는 셈이다. 1인 가구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 한국에서 혼자가 됨으로 인해 문득 느껴지는 공포라던가 외로움은 또 다른 수요를 만들어내는 느낌이다. 


영화 잔예 : 살아서는 안 되는 방은 음악으로 말하면 리드미컬한 색채가 조금 들어가 있는 교향곡 같은 공포를 전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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