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소설쓰기

이중인격

epilogue 다른 모습으로 변하지 않는 것

이 에필로그는 이중인격이 끝나기 한참 전에 먼저 쓴 것이다. 사람에 대한 속성 그리고 본질에 대한 생각으로 시작한 소설은 이미 6년이 지난 지금에도 완성을 하지 못했지만 가야 될 것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소설 속에서 등장하는 의사 헨리 지킬처럼 인간의 본성을 나누기 위한 시도는 가능할까? 명석한 지킬조차 그 실험에서 실패하고 내면의 악마인 하이드를 만들어낸 것이 아닌가. 자기가 사랑하는 여자조차 지켜줄 수 없는 지킬의 고뇌는 자신 내면 속에 다른 악마인 하이드 때문이기도 한데 그걸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2015년 11월에 쓴 프롤로그 격인 글에 있었던 표현이었다. 에너지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의 무게도 크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에너지가 크지 않다면 어둠도 크지 않다. 여성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남자의 몸을 가진 사람은 비단 나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한 몸속에 같이 공존하고 있는 현지와 나는 이렇게 서로를 이해하게 되었지만 어떤 방식으로 살아갈지에 대해서 결정하지는 않았다. 삶을 읽는다는 그녀의 생각과 삶은 그냥 살아간다는 나의 생각과의 견해 차이는 분명하다.


전혀 이해하지 못했던 서로의 관계에 대해서 대화를 할 수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우리는 생존의 가능성을 높일 수 있었다. 현지의 입장에서 혹은 나의 입장에서는 이해하지 못할 그동안의 삶은 공유할 수 있었다. 그녀는 배울 것이 많은 사람이라는 것은 맞았다. 철이 덜 들고 책임감도 없었던 나를 챙겨주는 것이 자신의 생존에 필요했기에 그러했겠지만 그럼에도 매우 잘 대처했다.


아직도 24시간은 남자의 몸으로 24시간은 여자의 몸으로 살아가고 있다.


이 사건을 통해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라는 것은 느꼈다. 단지 이제는 조금은 철이 들어서 내가 하는 일에 방해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적어도 내가 생각하는 것을 준구도 생각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안도감을 느낀다. 서로를 불러낼 수 있는 방법은 알고 있지만 온전하게 내 삶을 살고 싶다. 하루하루를 인생의 연습처럼 혹은 기회처럼 생각하면서 살아가면서 치유와 성장의 가능성을 보고 싶다.


법구경에 나오는 문구처럼 하루하루 한 방울씩 떨어지는 물이 주전자를 채우듯이 지혜로운 자는 티끌만큼씩을 모아서 자신을 선함으로 채운다. 적어도 지킬박사와 하이드처럼 변하지 않을 내 모습을 상상하면서 살아가고 싶다. 자신과 타인 안의 고통을 서로 마주 보는 것이 이중인격의 본질이다.


햇빛 속으로 걸어 나와서 생각 없이 걸어보았다. 그렇게 걷다 보면 무언가 생각나겠지. 문득 손을 내려다보니 손의 근육과 힘줄 그리고 핏줄이 내가 살아 있음을 알려주는 것만 같았다. 온전하게 나로만 살 수 없는 것은 인정하며 사는 것이 인생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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