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소설쓰기

삶의 법칙

다섯 번째 퍼즐

어릴 때의 꿈은 글을 쓰는 것이었지만 시간이 지나 여러 가지 일을 하고 결혼도 하면서 희석이 되어갔다. 하나 있는 아들이 30대 중반을 넘었지만 여전히 편의방에서 벗어날 생각을 하고 있지 않다. 짧게 다닌 회사를 뒤로하고 공무원을 준비한다고 하더니 계속해서 떨어지자 이제 집에서 칩거하면서 살아가기 시작했다. 아들의 방에는 편의점을 연상케 하는 과자 진열대와 안이 훤하게 보이는 냉장고를 하나 들여다 놓고 먹거리를 채워놓고 칩거하고 있다. 그래서 그놈을 부를 때 편의방 인간이라고 부른다. 먹거리가 떨어지면 편의점에 알바를 나가서 한 두 달 일하고 다시 한 두 달을 집에서 살아간다.


남편과 이혼을 하고 나서 방이 두 개인 빌라에 전세를 살고 있다. 그나마 정년까지 버틸 수 있는 청소직을 하고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녀는 KTX가 종착역에 들어오면 청소하는 일을 하고 있다. 먹거리가 떨어졌는지 돈을 달라는 아들과 최근에 말싸움을 하게 되었다. 이제는 더 이상 말하는 것도 귀찮아졌다. 상황이 바뀔 것처럼 보이지가 않았다. 여동생이 잠시 쉴 겸 여행을 가자는 말에 오래간만에 휴가를 가기로 했다. 매일 청소만 하는 공간으로 보던 KTX를 타고 여수를 가는 것이다. 평소에 기차를 탈 일이 없었지만 이번에는 자신이 직접 청소했던 기차를 타고 여행을 가는 것은 색다른 경험이기도 했다. 편의방 인간에 한 소리를 하고 내일이나 모레쯤 들어온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밥을 해놓았다는 이야기도 해주었다.


서울역에 올 때면 항상 다른 통로로 들어갔는데 이번에는 일반 여행객처럼 정문을 통해 개찰구까지 걸어갔다. 아직 동생은 안온 모양인지 주변을 둘러봐도 보이지 않았다. 요즘에는 서울역에도 일하는 사람이 별로 보이지 않았다. 모바일이나 키오스크에서 많은 사람들이 예약을 하기에 창구도 줄었고 기차역으로 내려가는 길에도 직원은 거의 없었다. 보이는 곳에는 사람이 없어지고 안 보이는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만 있는 세상이다. 서성거리면서 자판기 커피를 뽑아서 설탕의 달짝지근함을 느끼면서 뒤를 돌아보는 순간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언니, 많이 기다렸어?"

"아니, 정희야. 커피 마실래?"

"난 집에서 마시고 나왔어. 언니나 마셔."

"그런데 짐은 그것뿐이야. 2박 3일로 가는 건데?'

"여행 가본 것이 언제인지 기억이 안 나서 필요한 것만 챙긴다고 챙겼는데 이 정도면 될 거 같아서."

"아유~ 언니도. 오래간만에 가는데 기분 좀 내야지."

"넌 여수는 가본 거니?"

"응 난 친구들하고 3~4번 가봤지."

"그렇구나. 그런데 KTX는 비싸지 않아. 게다가 이 차량은 식당칸도 있어서 조금 비싸잖아."

"괜찮아~ 언니, 내가 예약했잖아. 이동하는 시간은 짧게 하는 것이 여행을 즐겁게 하는 법이야."

"그래, 뭐 여행을 가보는 것도 좋지. 출발시간이 된 거 아냐?"

"응 10분 남았으니까. 내려가서 기다리자."


둘은 각자 준비한 가방을 들고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갔다. 문득 자신이 어제 청소했던 차량이 오늘 배차된 차량이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아들 때문인지 평소처럼 청소를 하지 않은 것이 약간 마음에 걸렸지만 잊어버리기로 했다. 출발시간 5분쯤 정도 되자 조차장에서 대기 중이던 차량이 플랫폼으로 미끄러지듯이 들어왔다. 조금은 낯설었다. 굳이 표현하자면 자신이 매일 청소하던 객실을 예약하고 잠을 자는 느낌이랄까. 동생이 앖어서 예약했던 객차의 좌석번호를 찾아갔다. 그녀에게는 좌석번호가 아니라 청소상태가 먼저 눈에 뜨였다. 동생이 예약한 좌석번호 앞에서 서서 자신의 짐을 위에 올라고 그녀의 짐도 위에다가 올려주었다. 창가 쪽으로 가라고 동생이 눈짓으로 말을 했다.


"언니, 말은 그렇게 해도 여행 가려고 하니까 기분은 좋지?"

"응 좋다. 청소만 하다가 이렇게 타고 여행을 가니까 정말 좋아."

"그런 말 하지 말고 우리 여수에 가서 갈 곳을 내가 뽑아왔으니까. 한 번 봐봐."


동생은 가방에서 가져온 종이를 꺼내서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밤바다가 얼마나 아름다운지는 모르겠지만 여수는 가볼 곳이나 먹을 것도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KTX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동생이 준 종이 속의 여수이야기를 읽고 나서 앞에 꽂혀 있던 KTX 매거진을 꺼내서 읽기 시작했다. 어릴 때는 나름의 문학소녀였는데 세상은 그렇게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는 않았다. 이렇게 책자로 나온 글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


"언니 우리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응? 뭐 먹으려고?"

"그건 가서 보면 알겠지."

"그래. 난 배 많이 안고픈데."

"맛있는거는 배가 안고파도 들어가요. 일어나 언니."


동생이지만 자신의 성향과 많이 달랐다. 하고 싶은 것이나 먹고 싶은 것에 대해 주저함이 없었다. 동생이 이끄는 대로 그녀는 일어나서 식당칸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바로 뒤에 앉은 남녀를 바라보았다. 들으려고 하지는 않았는데 여성분이 KTX 매거진에 한 칼럼을 쓴 것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어쩌면 저런 모습을 꿈꾸면서 살아왔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스치듯이 하면서 동생을 따라갔다. 천천히 걸어가면서 잠시 창 밖으로 스쳐가는 풍경도 보고 구석구석의 청결상태도 살펴보았다. 식당칸으로 들어서자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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