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장춘몽, 인생은 잘 사는 방법을 찾는 것
하얀 연기가 자욱하게 피어 있는 방에는 삼삼오오 자리에 앉아서 열심히 숫자를 맞추는 사람들이 있었다. 순간순간 사람들의 얼굴에는 각기 희비가 오가기도 하면서 간혹 큰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었다. 남자의 손에는 확실하다고 생각한 패가 쥐어져 있었다. 이번 판만 먹어도 어느 정도 판돈은 쥘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잠시 뒤에 그의 꿈은 일장춘몽이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남자는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벌써 내리 4판을 모두 털렸다. 한 달 전까지만 하더라도 자신의 운이 하늘에 닿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 운이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이봐 재흥이, 어떻게 해. 가진돈도 이제 없잖아." 화려하면서도 헐렁한 티셔츠를 입은 남자가 촌스러워 보이는 황금색 시계를 찬 왼팔로 남자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아니야. 혹시 돈 좀 더 빌려줄 수 있어?"
"이자랑 원금까지 해서 벌써 1억이야. 여편네의 친정이 보상받았다며 그 돈 받아오면 될 거 아냐."
"나도 답답해. 분명히 받아서 어딘가 숨겨놓은 것 같은데 못 찾았어."
재흥이라고 불린 남자는 몇 번이고 집을 뒤졌지만 통장이라던가 현금을 발견할 수가 없었다. 온라인 뱅크를 많이 사용한다고 하는데 그에게는 익숙하지 않았다. 어촌에서 살아온 그는 실물통장과 비밀번호를 가지고 은행을 찾아가는 것이 편했다. 숫자로만 표시되는 스마트폰은 믿을 수가 없었다. 한 번은 와이프의 비밀번호를 알아내서 열심히 찾아보았지만 방법을 알지 못해서 실패했다. 가끔은 폭력을 쓰기도 했지만 아직 보상금이 들어오지 않았다고 하면서 발뺌을 했다.
"아무튼 2주일이야. 2주일 안에 성의를 보여." 재흥을 협박하는 남자는 그렇게 언변이 좋지 못했던지 말이 길지 않았다. 화려한 옷 색깔과 달리 압박하는 방법은 단순했다. 재흥은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건물 밖으로 나왔다. 이 건물은 과거에 횟집으로 사용되던 곳이었다. 한 때 이 작은 어촌마을은 적지 않은 관광객들이 찾는 곳이기도 했다. 채널이 지금처럼 많지 않았던 때 시청률이 꽤 높았던 드라마의 촬영지로 등장하면서 인기를 끌었지만 이미 20년 가까이 지나서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한적한 곳에 차량이 주차가 되어 있었는데 시동이 걸려 있는 상태였다. 2시간 가까이 움직이지 않는 차량은 경찰차였다. 추운 겨울날 순찰을 나온 차량은 인적이 드문 곳에 주차를 하고 차량 안에서 잠을 청하고 있었다. 매일의 일상이 달라질 것이 없었다. 요즘에는 외지인들이 많이 들어와서 그런지 몰라도 분위기가 예전 같지가 않았다. 무슨 어촌뉴딜인가라고 해서 이곳은 땅 보상 등으로 돈이 풀리면서 별별 사람들이 모이고 있었다.
"김순경, 업무시간이 거의 끝났으니까. 들어가서 인수인계하고 가자."
"예. 그러시죠."
풋 브레이크를 한 번 밟아서 파킹을 풀고 운전을 시작했다. 멀리 갯벌에서 바지락 등을 캐는 사람이 한 명 보였다. 갯벌에서 남자는 불편해 보이는 다리로 절룩거리면서 갯벌 속에 있는 해산물을 채취하고 있었는데 빨간색의 고무 다라에는 얼마나 담겼는지는 모르지만 남자에게는 그 일이 진심처럼 보였다.
"김순경, 저 친구 봉식이 아냐?"
"예 아마 맞을 거예요."
남자는 시계를 보고 다시 갯벌을 바라보았다.
"이제 밀물 때가 되지 않았나."
"한 시간 있으면 아마 물 들어올 거예요."
"뭐 알아서 하겠지. 어제오늘 일하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그런데 저 친구는 보상받을 집도 없나. 여기 사람들 보상이 시작되면서 거품만 잔뜩 들어갔어."
"같이 살고 있는 홀어머니 집이 있기는 한데 보상대상에 들어갔는지는 모르겠네요. 집도 방 두 개인가? 작아서 돈도 안될 거예요. 그래도 정말 열심히 일해요. 집같은 것을 보수하는 것도 도맡아 한다고 들었어요."
"하여간 저친구 참 열심히 살아."
가끔씩 나오는 낙지를 잡는 것은 그에게 갯벌에서 일하는 낙이기도 했다. 어릴 때부터 어렵게 살아서 배운 것이 없었던 봉식은 일생을 갯벌에 의지하면서 살아왔다. 경제적으로 무능력했던 아버지는 평생을 도박판을 전전하다가 5년 전쯤에 세상을 떠났다. 작은 어촌 마을을 터전으로 살아가는 이웃들은 대부분 아는 사람이었지만 최근에 낯선 사람들의 모습도 보였다.
이곳에서 읍내라고 불릴 수 있는 거리는 500미터 남짓한 구간으로 최근에는 술집이나 다방, 노래방들이 늘어나고 있었다. 그럴듯한 아파트는 없었지만 최근에 지어진 빌라 건물은 10여 채 정도가 읍내에 있었다. 그중에 한 건물의 3층에는 젊은 남자 다섯 명이 모여 살고 있었는데 단체 합숙을 하듯이 보내고 있었다. 이들은 매일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서 이곳의 땅을 홍보하면서 살 것을 권유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일행이 권하는 땅은 대부분 개발 가능성이 희박한 땅들이었다. 이 지역이 어촌 뉴딜로 개발될 것이라는 기사가 나오고 나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었다.
읍내에 자리한 한 다방에서는 5~6명의 남자들이 차를 마시면서 일명 다방 레지들과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여자들은 간드러진 웃음과 함께 뜨거운 커피 한잔으로 시간이 다른 곳보다 느리게 가는 어촌의 무료함을 달래주고 있었다. 대도시의 시간은 이곳보다도 빨리 지나가는 듯했다. 최근 들어 이 어촌마을은 한량들이 더 많이 늘어난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우리 박양, 이번에 사준 가방은 어땠어?" 나이가 60대 중반으로 보이는 남자는 은근슬쩍 여자의 허리를 감으면서 귀에 속삭이듯이 말했다. 여자는 간지러지듯한 표정을 지으면서 남자를 살짝 밀었다.
"뭐, 좋기는 한데 집에서 사모가 뭐라고 안 해?"
"뭐라고 할 것이 뭐가 있어. 내 땅 판 거 내가 쓴다는데 말이야."
"그럼 나 이번에 가지고 싶은 게 더 있는데~"
"박양이 필요한 게 있으면 사줘야지. 뭐가 가지고 싶은데?"
"그건 있다가 나 일끝 나면 같이 회 먹으러 갈 때 말해줄게. 나 다른 손님한테는 시간 끊고 나가는데 오빠한테만 그런 거 안 하잖아. 알지?"
"당연히 알지, 이 계집아이 다른 남자에게 눈 돌리면 가만 안 둬."
"응, 응, 나 생각 외로 일편단심이야."
박양이라고 불리던 여자는 남자의 품에 안기면서 이 세상에 없을만한 애교를 부리면서 자지러지는 웃음을 연신 뱉어냈다.
도박장에서 털린 남자는 오토바이를 타고 집으로 향해 가고 있었다. 분노조절장애가 있을 정도로 요즘에는 감정 기복이 심했는데 그는 이날은 마누라와 결단을 내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동안 돈을 잃었으니 이제 딸일 만 남았다는 근거 없는 기대에 부푼 마음은 매번 맞지가 않았다. 초반에는 항상 좋았는데 끝이 좋지 않았다. 일명 끗발만 좋으면 한 방에 해결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5일장이 설 때마다 여자는 채취한 감태를 비롯하여 밭에서 자란 대파, 상추, 마늘 등을 내다 팔으면서 생활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그나마 없는 돈마저 남편이 가져가면서 삶이 더욱더 비참해졌다. 친정엄마의 집이 조금 보상을 받았지만 그마저도 아빠라는 사람이 여자한테 홀렸는지 돈을 물쓰듯 쓰고 다니면서 도와줄 여력이 되지 않았다. 이 마을에 돈이 돌기 시작한 것은 6개월이 채 되지 않았는데 그동안 많은 것이 바뀌어가고 있었다. 한집 건너면 모두 아는 사람이고 그나마 정이라는 것이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낯선 얼굴들도 적지 않게 보이고 가끔씩 고급차들도 세워진 것을 볼 수 있었다.
퇴근을 하고 단독주택의 2층으로 올라가기 위해 대문으로 들어서던 그는 집주인과 눈이 마주쳤다. 눈인사만 간단하게 하고 사온 소주와 안주를 들고 2층으로 올라갔다. 그는 한 시간 전에 김순경과 순찰을 나갔던 서경사였다. 1년 전만 하더라도 그는 작은 도시였지만 본청에서 근무를 하고 있었는데 노래방 등의 뒤를 봐주다가 걸려서 좌천되어 이곳으로 오게 되었다. 여자를 워낙 좋아하던 터라 가정생활은 등한시했던 그는 결국 이혼하고 얼마 안 되는 돈으로 이곳에서 전세를 살게 되었던 것이다. 아무 재미없을 것 같은 이곳에 돈바람이 불고 있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마을이 좁아서 1년 만에 사람들의 행태를 대부분 알 수 있었기에 누구에게 돈을 뜯어야 되는지 고민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 그에게도 유일한 낙이 있었는데 바로 BJ 아름이었다.
"어머~ 어촌 왕자 들어오셨네요."
그녀가 방송하는 시간에 맞춰서 들어갔는데 역시 기대한 만큼의 격한 환영은 지루한 삶의 비타민이기도 했다. 우연하게 친구가 하는 것을 보고 들어갔다가 이제는 BJ아름은 삶의 일부가 되었다.
"아름이도 하루 잘 보냈어?"
"그럼요. 항상 오빠를 생각하고 있답니다."
둘의 대화가 시작되자 다른 참여자들이 시기를 하기 시작했다. 이때 반지의 제왕이 쏜 ★풍선 100개가 올라갔다.
"반지의 제왕님 ★풍선 100개 감사요. ♥♥♥"
"아름이 너무 이뻐요."
"항상 많은 관심 감사해요. 오늘은요. 아름이가 선물해준 별로 한 판에 10만 원짜리 초밥을 시켰어요."
"와~ 10만 원짜리 초밥은 어떤 맛이에요?"
그녀가 꺼낸 초밥은 보기 힘든 식재료로 만든 것들이었다. 성게알이 얹어진 초밥부터 시작해서 참치의 머릿살, 소고기의 아롱사태 등이 얹어진 초밥인데 그녀의 먹는 모습에 채팅방이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서 경사 역시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풍선 300개를 선물해주었다. 성게알이 얹어진 초밥을 먹음직스럽게 먹던 그녀가 손뼉을 치기 시작했다.
"어촌 왕자님 ★풍선 너무 감사해요. 오빠는 오늘 뭐했어요?"
"그냥 일하고 들어왔지 어제 야간이어서 오늘과 내일까지 오프야."
"그럼 저랑 오래 있을 수 있겠다."
서 경사 역시 한 때 잘 나갔던 때 잘 나갔다고 생각했었다. 이 지역에서 태어났지만 다시 이곳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그렇지만 현실은 이런 구석에서 근무하는 처지다. 진급하지 않는 이상 다른 지역으로 갈 가능성은 없었다. 어차피 과거의 잘못 때문에 진급은 쉽지 않은 데다가 공부를 좋아하지 않아서 진급시험은 생각하지도 않고 있었다.
그 땅이 개발되던 개발이 되지 않든 간에 봉수에게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자신은 그냥 수수료만 받으면 그만이었다. 자신의 친형처럼 갯벌에서 생고생하면서 작은 돈을 벌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태어나는 것도 잘 태어나야 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면서 살아왔다. 대도시에 공부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가정형편이 그렇게 되지는 않았다. 최근에는 살고 있는 곳에 새바람이 불고 있었다. 별다른 능력이 없이도 땅만 잘 팔면 한 건에 수백만 원은 거뜬히 벌 수 있을 것 같았다. 봉수는 형인 봉식이의 잔소리도 듣기가 싫었다. 그래서 서울에서 내려왔다는 사람들과 함께 빌라에서 같이 거주하면서 일을 했다.
"야 밥 먹자." 거실과 이어져 있는 부엌의 공간은 크지 않아서 대여섯 명이 앉으면 꽉 찼다. 그래서 2~3명씩 번갈아가면서 식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 매번 비슷하지만 대부분의 식사 메뉴는 배달음식이거나 컵라면, 김밥, 최근에는 밀 키트 제품들도 자주 먹는 편이었다.
"너네들 이번 주에 성과 올리겠냐?"
다들 말이 없었다. 이곳을 운영하는 사장만 이번 주에 한 껀 올린 것 외에는 성과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이제 막 20살이 된 막내는 성과는 없어도 말은 잘했다.
"너네들 이래서 언제 독립할래."
딱히 대답할 것이 없어서 다들 말없이 식탁 앞에서 서로의 눈치만 보고 있었다.
"내가 무슨 말을 하겠냐. 열심히 하자. 다들 먹어."
봉수는 이곳에 들어온 지 3개월 정도 되었는데 제대로 한 건을 해본 적이 없었다. 자신이 말재주가 없는 것이라고 생각되었는데 조만간 한 건은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집에서는 허황된 꿈을 꾸지 말라고 했는데 사실 이 방법 외에 다른 길은 없어 보였다. 이제야 공부를 할 수도 없었고 주변 친구들을 보면 공무원 시험도 정말 어려워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