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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Nov 22. 2021

삶의 리듬

글과 음악은 리듬감으로 만들어진다. 

비가 내리고 음악이 흐르면이라는 가사는 글이 써지고 음악이 흐르면으로 바꾸어보면 어떨까. 삶의 리듬을 표현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고 그렇게 표현되어왔다. 최근 가야금을 배우면서 별생각 없이 현을 튕겼는데 가르치시는 분이 박자에 대해 글과 비교하는 것을 보고 아~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띄어쓰기 하나에 글의 맥락이 완전히 달라지듯이 음악 역시 그렇다. 리듬 타듯이 글을 쓰고 리듬 타듯이 음악을 만든다. 그것이 신의 한 수처럼 사람에게 전달이 된다. 

가야금의 현(絃)은 전통음악의 리듬에서 나타나는 소리(音)의 흐름인 가락을 이끄는 박자를 장단(長短)을 만들어낸다.  음의 길고 짧음을 중시한 마치 숨결과 같은 섬세한 감성이 수평적으로 배열되면서 자연적인 울림의 조화가 가야금에 있다. 

한국의 대중음악은 그렇게 좋아하지 않고 채널만 틀면 나오는 변칙적인 느낌의 트로트는 더더욱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한국적인 현악기인 가야금으로 연주하는 음악은 매력이 있다. 깊이가 있어서일까. 산조(散調)란 문자 그대로 흐트러진 가락이라는 뜻으로 크게 전통 민속 음악의 기악 독주곡이다. 

정말 쉽게 연주했던 아리랑을 연주하는 방법을 모두 사용했을 때 쉽지가 않았다. 흉내 내는 것과 연주하는 것의 차이는 분명하게 있다. 흉내 내는 글이 기레기가 쓰는 기사들이라면 연주하듯이 쓰는 글이 다르듯이 말이다. 글의 깊이는 항상 고민하게 된다. 적지 않은 분야에서 일을 해봤지만 일의 깊이는 한계가 있다. 정말 파고들듯이 할 수 있는 일이라 할지라도 한정적이다. 

글은 항상 즐겁지만 매번 어렵다. 새로움을 찾아내지 않으면 글은 항상 깊이의 얕음을 파고 들어와서 스스로를 괴롭힌다. 개인적으로 말한다면 직장은 정말 마음이 편하고 쉽다. 인간관계나 뭐 여러 가지 것들이 있지만 적어도 스스로가 자신을 쫒아다니지 않는 것만 보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나에게 그림자로 남아 있는 기분은 글에 있다. 

여백을 자유로운 즉흥적 감성으로 메꾸어낸 글처럼 우리는 리듬을 찾아가면 살아가는 것이다. 리듬이라는 것은 모든 것에 적용이 된다. 산조 음악은 생명의 근원인 자연의 섭리와 생명의 감성적 상태가 들어가 있다. 사람들이 그렇게 생명의 감성을 찾아가기 위한 길을 찾아가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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