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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Jul 14. 2016

전쟁과 평화

‘영원한 적도, 아군도 없다. 영원한 이익만이 존재할 뿐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2년 전 여수시의 남쪽에는 민족상잔의 비극을 되돌아보고 평화를 위한 염원을 담아 평화테마촌이라는 곳을 개관하였다. 폐교였던 곳을 리모델링해서 만든 무기전시관에는 사업비가 7억 7,400만 원이 들어갔으며 한국전쟁 당시 기록된 각종 자료와 한국군 무기 및 북한 무기를 합쳐 총 245점의 유물이 전시되었다. 


밤섬이 정면으로 보이는 여수시 평화테마촌은 향일암에서 2km쯤 떨어진 곳에 자리하고 있다. 매주 월요일 휴관하며 관람시간만 지키면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평화로운 이곳의 이름은 평화테마촌이지만 한국전쟁은 동족상잔의 비극의 중심에 있었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의 포격이 시작되면서 전쟁이 시작된다. 3년 이상 끌어오던 한국전쟁은 유엔군 측과 공산 측 대표가 서명하면서 멈추었다. 그 이후 휴전 협정 12일 뒤인 6월 25일에 포격으로 시작된 결정적으로 휴전이 된 것은 53년 8월 8일 한미 상호방위조약이 가조인되었을 때이다. 

한국전쟁 당시 여수는 전쟁의 참화에서 조금은 떨어져 있었지만 그 기간은 얼마 되지 않았다. 여수 역시 전쟁의 참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 영향 아래 들어가게 된다. 살길을 찾아 서울을 탈출했던 수많은 시민들이 이곳 여수까지 오기도 했다고 한다. 


지금이야 기술이 발달되어서 대전차 로켓포의 휴대성이 좋아졌지만 한국전쟁 당시만 하더라도 대전차포는 휴대가 쉽지 만은 않았다. 전차를 잡기 위해 만들기 시작한 RPG 시리즈는 2차 세계대전을 대표하는 대전차 포켓 포로 구소련이 최초로 RPG-2를 개발하였으며 1961년 기존 RPG의 사거리와 위력을 강화시킨 RPG-7 대전차 로켓포로 오늘날 가장 인기 많은 대전차 로켓포이다.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RPG-7은 소말리아 내전에서 특수전 헬기 블랙호크 2대를 격추시키도 하였다. 

보통 포를 다루는 부대를 말하면 포병을 많이 생각한다. 그러나 전투무기가 부족했던 한국전쟁 당시 가장 유용하게 사용되었던 무기는 보병부대에서 운용되는 박격포이다. 야포라고 불리는 견인포보다 크기가 작지만 높은 각도로 포탄이 날아가기 때문에 산이 많은 한국 지형에서 유용하게 사용되었다. 60mm 박격포는 사람 손으로도 운반도 가능하고 기동성이 좋았기 때문에 많이 사용되었다. 

비교적 현대식 무기가 등장했던 한국전쟁의 결과로 인해 한국은 150만여 명에 달하는 사상자와 20만여 명의 행방불명자, 25만 명의 부상자를 많았다. 결과적으로 전체 인구의 1/2 이상이 참화를 겪었다고 한다. 휴전 직후 집을 잃고 거리에서 방황하는 난민의 수가 200만여 명에 이르렀고 상시 굶주림에 직면한 숫자가 전체 인구의 20~25%에 달했다고 추론된다. 

구소련의 지원으로 시작된 한국전쟁에서 북한군이 많이 사용한 소총은 구소련 등에서 공급받은 소총이다. 주력으로 사용했던 총에 사용된 탄약은 7.62mm로 이 크기의 탄약은 러시아군이 지금도 주력 소총으로 사용하는 AK-47에서 사용이 된다. 

이 소총들을 보면 확실히 한국전쟁 당시에 북한군이 한국군에 비해 화력 우세에 있음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영화에서도 많이 등장하는 소총 중에 한반도에서 사용된 무기들이 적지 않다. 예를 들어 원거리 목표를 정확히 타격하는 임무를 수행했던 걸작 드라구노프(SVD 반자동소총)등은 모두 구소련에서 개발되었다. 

지금도 저런 신분증을 사용하는지 모르겠지만 북한의 신분증과 당원증 등을 볼 수 있다. 마치 1970년대의 한국 의료보험증을 보는듯한 느낌이다. 

소련의 대전차 수류탄이었던 RPG-43이나 북한군의 모방 수류탄인 F-1, PRS-43탄 창도 전시되어 있다. 특히 '토카레프'라고도 부르는 TT권총은 2차 세계대전 때 독일의 P38과 함께 인기를 끌던 권총이다. 구소련의 TT권총은 단순화된 구조로 인해 잔고장이 없었고 장탄량도 많은 데다가 총구 속도가 빨라 관통력도 좋았다. 한국전쟁 당시 한국군을 상당히 위협했던 북한군 장교의 무기이기도 하다. 

지금은 현대식으로 변해서 이런 내무반의 모습을 보기는 힘들다. 일명 구 막사 시대를 거쳐 신막사 초기에도 이런 형태의 내무반은 일반적이었다. 1990년대 중반까지 이런 막사는 전방에 가면 흔했고 모든 군인들이 단체 생활할 때 익숙한 모습이기도 했다. 옛날에 군 생활하던 사람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접해볼 수도 있다. 

무기전시관 바로 옆에는 북한 반잠수정 전시관도 자리하고 있다. 특수 기체를 이용하여 장시간 수중에 체류할 수 있는 포화 잠수 방식으로 해군 해난구조대가 프랑수 교육 연수 시 450m 수심과 같은 환경에서 성공적으로 임무를 수행한 적이 있는데 이들의 교육성과가 실제 작전에서 발휘된 바가 있는데 1998년 여수시 돌산읍 임포 지역 앞바다로 침몰한 북한 반잠수정을 수심 해서 인양하면서 나타났다. 햇볕정책이 한참 진행되던 1998년 12월 17일 여수시 돌산읍 임포 지역에 북한  반잠수정이 몰래 들어오다가 야간 감시장비 (TOD)에 움직임이 포착이 되었다. 이 반잠수정은 해군의 함포사격으로 인해 얼마 지나지 않아 침몰하기 시작하였는데 이어 우리 군의 폭뢰 네발이 결국 거제도 남방 100km 해상 남해의 찬 바닷물 속에 침몰시켰다. 

침몰된 직후 끌어올려진 잠수정이 이곳에 전시되어 있다. 북한이 보유하고 있는 유고급과 시호스급은 보통 잠수정으로 분류가 되는데 반잠수정은 그것보다 규모가 작은 편이다. 잠수정과 잠수함을 구분하는 기준은 배수량으로 배수량 200톤 미만을 잠수정, 200톤 이상을 잠수함으로 분류한다. 

북한은 P-4급, 유고급은 모두 잠수정으로 보고 모형으로 보는 것과 같은 작은 크기의 잠수정은 무게가 10.5톤에 불과하며 길이는 12.8m에 반잠수정의 특성상 최대속도는 85km에 달하기도 한다. 그러나 잠수 깊이는 20m에 불과하고 무장은 어뢰 2발이 전부이다. 즉 독자적으로 작전을 수행하지 못하고 모선이 있어야 남해까지 이동이 가능하다. 최대 탑승인원은 8명 정도이다. 


북한 반잠수정(I-SILC)의 앞부분은 생각보다 멀쩡한 편이다. 이런 형태의 반잠수정은 이곳에 전시된 것외에 1983년 부산 다대포 앞바다에서 침투 후 귀환하다가 해군 함정에 의해 격침된 반잠수정도 이와 유사한 기종이다. 

끌어올려진 북한 반잠수정에서 노획한 장비는 총 70종 589점에 달하며 전시되는 품목으로는 M61체코 기관권총 1정, 수류탄 2 발등의 무기 및 화약류가 있고 각종 침투 장비가 15종 15점, 압축 식량, 밥통 조림, 고무밴드, 유해가스 마스크 등이 있다. 

한반도가 분단되고 한국전쟁을 거쳐 그 아픔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비교적 최근까지도 북한은 각종 침투장비를 통해 한국을 엿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전쟁은 국가 간 극대화된 폭력이 표출된 결과이다. 그리고 전쟁은 해결책이 될 수 없으며 서로 상대방에게 분노를 들끓게 하는 기폭제가 된다. 필자는 여수시의 유명한 여행지가 아닌 평화테마촌을 먼저 둘러보면서 사람을 살상하는 무기와 그 전쟁의 흔적들을 살펴보았다. 지금은 과거의 기록처럼 살펴보지만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에게는 지옥 같은 나날이었을지도 모른다. 


전쟁은 과거의 러일전쟁을 종결할 때 나왔던 ‘영원한 적도, 아군도 없다. 영원한 이익만이 존재할 뿐이다’이라는 격언처럼 냉혹하기 그지없는 존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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