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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Dec 23. 2021

위대한 게츠비

그렇지만 위대해질 수 없었던 남자

위대한 게츠비를 쓴 작가 스콧. P. 제럴드는 말년은 우울 그 자체였다. 40대 초반 혹은 중반으로도 볼 수 있지만 그 나이에 세상을 떠난 작가다. 작가로 성공하고 싶다는 욕망 그리고 그 빈 공간을 버텨내지 못하는 자아는 방탕한 생활로 이어졌다. 역사 속에서 수많은 작가를 보았지만 경제적인 부분을 잘 보았던 사람은 드물었다. 집안이 든든하게 잘 버텨주면 모르겠지만 자신만의 힘으로 작가의 길을 걸었던 사람 중에 빈곤함을 겪지 않았던 사람은 많지 않다. 있으면 모두 써버리고 나중에 일은 나중에 생각한다. 그들의 생활방식이 그러했다. 그래서 그들의 삶이 위대하면서도 위대하지 않아 보였다. 스스로를 파괴하고 무너트리면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이 작가의 삶이다. 그걸 견뎌내려면 내성이 무척 강해야 한다. 


스콧. P. 제럴드의 소설 중 살아생전에 인정받았던 소설은 위대한 게츠비다. 그 소설 외에 나중에 인정받은 것도 있지만 사후의 일이었다. 그의 소설을 읽어보면 화려하지만 처절하다. 텅 빈 사람의 마음이 지워질 색채로 가득 차 있다. 그의 소설의 정점은 위대한 게츠비였다. 옥스포드대를 나왔다고 하지만 그 품격 있는 언어조차 구사하지 못하고 화려한 언변으로 포장하는 남자가 게츠비다. 

작가는 당대의 알려진 작가들과 교류하면서 작가로서의 활동 역시 활발히 했으나, 사치스러운 생활을 유지하고자 확실히 팔릴 만한 단편소설들을 쓰는 데 재능을 낭비했다. 삶의 수준은 무척 중요하다. 그렇지만 남들이 아닌 스스로가 보는 삶의 기준이 필요하다. 성장기에 재력 있는 외가의 도움을 받고 자란 경험으로 인해  물질에 대한 갈망과 그에 대한 저열함을 동시에 느끼는 모순적인 성격이 작가에게 자리 잡게 된다. 다행히 필자는 외가나 친가나 모두 가난해서 다행(뭔지 모르게 균형을 이룬 것 같은)인 것 같기도 하고...

위대한 게츠비는 작가의 그 모습을 그대로 닮아 있다. 어떤 삶을 살고 싶어 했는지를 소설 속에 잘 녹아내었다. 실제 작가는 영화 속의 게츠비처럼 길지는 않지만  아내 젤다와 함께 향락적인 사교 생활에 빠져 방탕한 나날을 보낸다. 위대한 게츠비를 꿈꾸는 사람들이 지금도 넘쳐난다. 마음속의 제어라는 것이 필요하지만 그런 것이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바로 옆에 있지 않은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연기는 잘하긴 잘한다. 그 헛된 삶을 위대하게 그려내려고 했고 그 모습이 자신인지도 몰랐던 주인공을 연기했다. 정답은 없다. 해답으로 가까워질 수 있는 것이 인생일 뿐이다. 남편이 떠나가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난 젤다는 그와 격렬히 싸웠고 헤어지지 못했지만 피츠제럴드 부부는 나란히 묻혔는데 그 묘비명에  “그렇게 우리는 과거 속으로 끊임없이 밀려가면서도, 흐름을 거스르며 배를 띄우고, 파도를 가르는 것이다.”쓰여 있다. 현재의 삶... 그것이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해답이다. 위대한 게츠비는 박수를 칠만한 작품이지만 그의 삶처럼 살라고 하면 그냥 아주 평범한 살려고 발버둥 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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