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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Jun 15. 2022

돈의 약탈

전방위적으로 약탈하는 자본의 습격

최근 세계의 생산자 물가가 심상치가 않다. 생산자 물가가 한계치에 오르면 결국 소비자에게 전가가 될 수밖에 없다. 사도 그만 안 사도 그만인 물건들은 상관이 없지만 사는 데 있어서 꼭 필요한 것들은 값이 올라갈 수밖에 없다. 시장에서 혹은 대형마트(방역 패스를 하고 나서 들어간)에서 물건을 사보면 알 것이다. 요즘 물가가 어느 정도 수준인지 말이다. 그런데 가지고 있는 돈은 똑같다. 


무얼 상상하든 그 이상으로 오를 것이라는 이번 물가는 기대가 많이 된다. 돈의 약탈은 단순히 물가를 올리는데에서 그치지 않는다. 지난 정권이나 현 정권에서 보듯이 이미 학벌과 자리는 돈으로 공고하게 만들어지고 있다. 1억이라는 돈을 유산으로 물려줄 수 없는 가정이 셀 수 없지만 그 돈조차 물려주기 위해서는 5,000만 원을 제외하고 세금이 붙는다. 그런데 희한하게 교육에 쓰는 돈은 그런 세율이 붙지 않는다. 정말 이상하지 않은가. 자식에게 유학이나 국내에서도 1년에 1억씩 쓰는 사람들이 있다. 이 돈에는 왜 세금을 붙이지 않는지 정치인들은 궁금해하지 않는다. 


교육에서 자본으로 불평등이 심화되면 무슨 일이 벌어지냐면 돈을 잘 벌 수 있는 그럴듯한 자리는 모두 대물림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벌어들인 돈은 다시 자식으로 이어진다. 그래 놓고 하는 말이 엘리트 집안이라고 떠드는 것이다. 정치가 왜 바뀌지 않느냐고 묻는다면 두 개 정당 모두 지금이 좋기 때문이다. 어차피 한쪽에서 하고 시간이 지나면 상대방이 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사이좋게 나누어서 가지면 그만이다. 


돈의 약탈적인 모습은 여러 가면을 쓰고 등장한다. 가장 최악인 것은 정치와 교육 혹은 일자리에서다. 이 세 가지에 구조적으로 결합이 되면 그 이후부터는 바꿀 수 있는 것이 없다. 돈의 속성을 안다면 사업가나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사람이라면 몰라도 컨트롤할 수 있는 자리에는 격이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자신이 가진 것을 이용해 자식에게 발판을 만들어주지 않을 정도의 도덕을 겸비한 사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자의 힘으로도 너무 뛰어난 사람까지 제약할 필요는 없다. 


정치인들은 선거 때마다 생각할 것이다. 왜 투표권은 1인 1표인가에 대해 항상 의구심을 가지면서 서민들을 위한 척을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어떤 자리 혹은 어떤 능력을 가졌느냐가 아니다. 어떤 생각을 만들어왔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돈은 자리 나 능력을 욕심내도록 할 수 있지만 흔들리지 않는 신념은 돈이 좌지우지할 수가 없다. 


미국의 패권주의로 풀어놓은 3 경이라는 돈은 전 세계를 단 2년 만에 미친듯한 야수가 되어 돌아다녔다. 그 엄청난 돈은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돌아가지도 않았다. 만져본 적도 없는 수많은 세계인들이 이제 고통에 들어가야 될 시간이다. 아무것도 안 했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위치에 있기에 결국 피해를 입게 될 것이다. 경제적으로 취약한 국가부터 한국까지 여파가 오겠지만 이 파고는 아주 길고 지루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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