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이 멈추고 고요하게 앉아 있는 안정사
멀고 먼 곳에 자리한 통영 안정사에는 해가 넘어갔고 어둠이 내리듯 인적이 끊긴 산속에서도 물은 흐르고 생명이 살아가고 있었다. 산에는 매 순간 아름답게 살아 있음을 알게 해주는 물과 꽃이 있는데 꽃은 피어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물이 흐르는 곳에 꽃은 핀다는 수류화개는 모든 것이 담겨 있다. 추운 겨울을 이겨내야 잘 성장할 수 있다고 한다.
해가 넘어갔지만 아직 사물을 분별할 수가 있어서 통영의 깊은 곳에 자리한 안정사를 찾았다. 많은 것을 주는 산이지만 매번 환하게 보이는 것만은 아니다. 이렇게 어둠이 내릴 때나 안개가 싸여 있을 때는 산이 보이지 않을 때도 있다.
안정사로 건너가기 위해 작은 돌다리를 건너가 본다. 안정사가 자리한 산은 벽발산이라고 부르는 산이다. 통영 벽발산에 자리한 안정사(법화종)는 1400여 년의 유구한 역사를 지나며 산내에 12 암자를 거느린 유서 깊은 대찰이기도 한데 안정사 불교의례 악가무는 많은 가치가 있다고 한다.
저녁노을 때문인지 몰라도 산의 색이 붉게 보인다. 계절에 따라 시간대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때론 안개에 싸여서 안보이기도 하는데 산이 안 보인다고 산이 없는 것도 아닌데 사람들은 그저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판단한다.
사찰에 올라서서 문득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마음은 본래 깨끗하고 마음 안은 이미 고요한데 마음이 고요하지 않다면 그것은 마음이 감정을 따라갔기 때문이라고 한다. 불교에서 본래 마음에는 아무것이 없다고 말하고 있다. 모든 대상의 본질을 본다는 것은 밝은 눈으로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그 모든 가능성을 열어주는 데 있다.
사찰의 경내를 조용하게 거닐어보았다. 통영 안정사에서는 목조 지장 시왕·지장보살상과 제4대 왕 오관 대왕상에서 복장 발원문을 비롯하여 후령통, 경전류 등이 발견되었던 곳이다.
스님이 한 분 나오시면서 가볍게 합장을 해서 필자도 목례로 대신하였다. 통영 안정사의 전통과 의식의 원형이 있는 안정사 영산재는 신라 태종 무열왕 원년에 원효대사께서 안정사를 창건한 이래 산내암자로 12 사암을 두었다. 요즘에 눈이 많이 내렸지만 통영에는 눈이 내리지 않았다.
비록 햇살은 저너머로 넘어갔지만 다시 내일이 되면 겨울 햇살 가슴에 가득 담고 추운 겨울을 귀하고 따뜻한 성장과 성숙의 시간으로 맞이하면 좋겠다. 경내에 조명이 잘 설치가 되어 있어서 돌아보는 데는 무리가 없어서 좋다. 그냥 가벼이 있는 것 같은 석조물도 보고 오래된 사찰의 건물도 살펴본다.
가만히 있으니 사찰의 안쪽에서 들여오는 염불 소리가 들려온다. 목탁의 운율에 실린 청아한 소리가 어둠을 가르며 숲으로 날아가 나무로 스며들어간다.
사찰에서 가끔 질문을 할 때가 있는데 두 손을 가슴께에서 마주하는 합장 수행은 마음을 모으는 법으로 인류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수행법이라고 한다. 큰 절(오체투지) 수행은 자신의 관점을 내려놓은 무아 수행의 최고의 방법이라고 한다. 겨울의 어느 날 청정하고 고요하고, 잠시의 지혜로움이 스쳐가는 시간이 통영 안정사에 내려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