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의 여운 양촌 양조 가업을 잇다.
한국에서 술은 무엇이었을까. 조금 더 올라가면 조선시대 전통주로서의 술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조선시대에 술은 양반 가문이라면 그 전통을 간직해야 할 중요한 가치를 가지고 있었다. 먹고살기 힘들었던 그때 쌀은 소중한 생명의 자원이기도 했다. 지금처럼 화학주가 아닌 곡주로 만들던 그때는 술을 만들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곡식이 들어갔다. 가뭄이 들던가 흉년이 들었을 때는 금주령을 비롯하여 술을 아예 못 만들게 하기도 했다. 심지어 영조 때는 술을 한 잔 마셨다는 이유로 말할 기회도 주지 않고 처형을 하기도 했었다.
1920년에 시작된 논산 양촌 양조장은 올해로 103년을 맞이하는 기업이자 충남 술을 대표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우렁이쌀 막걸리를 만들기 시작해서 지금은 고품질의 막걸리와 동동주, 청주, 증류주를 만들어서 내놓는다. 술을 빚는 데 있어서 전통방식으로 만들면 중종 때는 누룩으로 빚는 술의 양이 천여석에 이르렀다고 하니 그 양을 예상해볼 수 있다.
오래된 방식으로 술을 빚는다는 논산 양촌 양조장을 찾아가 보았다. 1대 이종진 대표를 시작으로 지금은 3대 이동 중으로 이어졌다. 코로나19에 집에서 마시는 술이 늘어나면서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술맛을 아는 사람은 같이 먹는 음식도 중요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한국은 술맛을 알기보다는 술 취함을 반복하기 위해 마셔왔다.
이날 양촌 양조장의 이동중 대표를 만나볼 수 있었다. 길지는 않은 시간이었지만 술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눌 수가 있었다. 이곳을 들어가자마자 누룩의 오래된 향이 묻어 나왔다. 역시 그 시간이 만들어낸 향은 어쩔 수 없는 듯하다.
술의 역사에 대해 담아놓은 책의 한 부분을 채우고 있는 양촌 양조장에 대한 이야기도 잠시 읽어본다. 양조장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시간과 공간, 사람이 필요하다. 그렇게 조선시대의 역사가 담긴 술이 일제강점기에 끊겼다가 다시 살아나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몰트도 좋아하지만 잘 만들어진 전통주도 좋아한다. 전통주중 누룩과 쌀가루로 만들어진 생동동주나 서천의 한산소곡주의 맛은 별미이자 지역의 맛이다. 대대로 물려받은 조선시대의 술을 만드는 가양주 기술은 대를 이어서 반드시 기록되어야 했었다. 술 이야기를 하다 보면 끝도 없을 만큼 많은 이야기가 있다.
대표의 설명과 함께 오래전에 만들어진 양조장을 둘러보았다. 대들보 등은 예전에 만든 그대로 남아 있다. 이 건물의 상량에 사용된 목재의 아래를 보니 소화 6년 신미 6월 9일이라고 한자로 쓰여 있다. 일제강점기에는 자신들의 기준으로 일자를 표시했다. 소화 6년은 1931년이다. 소화는 일본의 제123대 천황 요시히토(嘉仁)가 심장마비로 사망한 해이다. 현재의 일본 토대를 만든 일본 메이지 천황의 서자로 태어나 왕좌에 올랐으며 아들이며 군국주의를 꿈꾸었던 히로히토 사이에서 그다지 큰 역할을 하지는 않았다. 참고로 우리는 한자로 소화라고 부르지만 일본인은 쇼와라고 한다.
술이 익어가는 과정을 그대로 볼 수 있도록 건물구조를 만들어두었다. 누룩에 의해 잘 익어가는 술의 향기가 올라오는 것만 같다. 왕이 내린 술을 마시는 회식자리는 조선왕조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졌다. 태종이 양녕대군을 폐위하고 그 후계자를 선택할 때 술을 아예 입에도 대지 않았던 효령대군 대신 추후 세종이 될 충녕대군은 술을 마실 수는 있어서 선택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곳은 지금도 술을 만들 때 사용하는 물을 길어 오르는 옛날의 우물이라고 한다. 항아리가 묻힌 우물로 직접 보아도 알겠지만 우물이 상당히 깊은 편이다. 모래가 섞이지 않고 맑은 물을 길어 올리기 위해 항아리를 아래에 묻었다고 한다. 예전에는 두레박으로 길어 오르다가 지금은 모터를 사용하고 쓰고 있다고 한다.
이 오래된 항아리에서 소화라고 하는 연호가 보인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는 재산이라고 할 정도로 항아리는 무척이나 비쌌다. 그래서 조금 금이 가면 고쳐 쓰곤 했다고 한다.
당시에 사용했을 많은 항아리들이 이곳에 자리하고 있다. 언제 사용했던 항아리인지 표시가 되어 있어서 그 역사를 알 수가 있다.
지금은 조금 법이 달라졌지만 술을 만드는 곳과 술을 파는 곳이 분리가 되어야 하는데 그래서 양촌 막걸리 카페 공간을 새롭게 만들어두었다고 한다. 안에 들어가 보면 예전에 사용했던 그 공간의 모습이 남아 있다.
카페에 들어와서 대표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옛날에 술을 만들고 이곳에서 한 주전자를 마시면서 보냈던 그 시간을 이야기하면서 앞의 대둔산 계곡에서 흘러내려오는 물이 논산천에 이르기까지 맑고 깨끗했던 그때로 돌아가 보았다. 물론 그 시기에 필자는 이곳에는 없었다.
오는 길에 맛있는 딸기가 먹고 싶어졌다. 논산에서 유명한 딸기는 올해 작황이 안 좋아서 주머니가 가벼운 요즘 자주 먹기가 쉽지 않다. 1kg 두상자를 구입을 했다. 확실히 도시의 대형마트나 앞의 마트보다는 저렴하고 크기고 확실하게 좋다. 향도 좋은 딸기를 득템 해본다.
딸기의 크기를 가지고 있는 스마트폰과 비교해보면 대충 상상해볼 수 있다. 역시 딸기는 맛있고 큰 것이 좋다. 논산딸기축제는 코로나 사태 발발 후, 2020년 축제를 취소하고, 2021년 축제는 온라인으로 추진하여 ‘성공한 온라인 축제’로 평가받은 바 있는데 올해로 24회째를 맞는 ‘2022년 논산딸기축제’를 2월 23일부터 2월 27일까지 5일간 온라인(유튜브 채널 ‘논산 딸기향 TV’)으로 개최하기로 결정하였다고 한다.
100년의 여운을 가지고 있다는 양촌 양조장에서 판매되는 술은 착한 수제 찹쌀 청주라는 우렁이쌀 청주, 우렁이 쌀 손막걸리 드라이, 양촌 생막걸리, 양촌 생동동주, 우렁이쌀 손막걸리 등이 있는데 이번에 접해본 것은 뒤끝 없는 감칠맛의 양촌 생동동주다. 96년을 이어온 전통방식으로 국내산 쌀과 누룩, 대둔산 자락 천연수로 빚어진 깔끔한 맛을 자랑한다.
생동동주가 내는 감칠맛과 청량감이 논산의 딸기와 궁합이 꽤 잘 맞는다. 살짝 여운이 남는 뒷만을 딸기가 잘 잡아준다. 요즘에 나오는 딸기가 그런지 모르겠지만 상큼함이 더해진 신맛이 더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