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주성의 조양문에서 홍화문까지
사대문은 조선의 도시계획에서 중요한 관문으로 한성을 비롯하여 곳곳에 자리한 대부분의 읍성에는 사대문을 만들었다. 홍성의 홍주성 역시 사대문이 있었는데 지금은 주요 관문이었던 홍주성의 동문인 조양문과 남문인 홍화문만이 남아 있고 일본인들에 의하여 서문이었던 경의문과 북문인 망화문은 사라져 버렸다. 홍주읍성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처형되었는데 동학운동 때 동학군이 처형되었으며 천주교 신자들도 처형된 곳이기도 하다.
지금 홍성이라는 지역은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코로나19에 영업시간의 제한이 있기는 하지만 전에 보았던 모습과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고종 광무 10년(1906) 항일의병이 일어나 일본군과 홍주성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는데 그때의 흔적이 조양문 곳곳에 남아 있다. 시간이 있는 분들이라면 곳곳에 남겨진 전투의 상흔을 볼 수 있다.
홍성의 중심은 홍성군청이 자리한 곳이다. 예전에 홍주성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는 예스러운 모습을 간직한 곳이다. 야경이 잘 설치가 되어 있는 홍주성은 밤에 걷는 데에도 부담이 없는 공간이다.
홍성군청, 더 정확하게 ‘안회당’은 홍주목사의 집무실이었던 곳이다. 상징적 치소인 안회당으로 인해 역사적·문화적 가치가 높은 곳으로 홍주목 관아 35개 건물의 핵심이 되었던 곳이다. 홍주성의 둘레와 여름과 겨울에도 마르지 않는 샘이 하나 있다는 세종실록지리지의 기록의 장소중 샘은 어디일까.
지금은 일상으로 볼 수 있는 조명을 활용한 메시지이지만 스마트시티 연구할 때만 하더라도 일찍이 본 적이 있는 광고의 수단으로 시작되었다.
홍주성의 과거 모습과 현재 모습, 미래 모습은 홍성군의 중심에 있기에 이렇게 야경으로도 쉽게 접할 수 있다. 외진 곳에 있었다면 접근성이 좋지 않았을뿐더러 조명시설도 잘 갖추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홍주성과 홍주성 순교성지 등 역사, 문화적 자산이야말로 홍주 역사 1000여 년의 역사를 담고 있다.
지금도 꾸준하게 홍주성의 성곽을 이어가면서 복원을 하고 있는 곳이다. 증부권을 모두 아우르던 곳이 홍주성이라는 곳인데 경기도 남부에서 충청남도에 이르기까지 22개의 군과 현을 통치 관할하던 곳이다.
조금 높은 곳에 올라서서 홍주읍의 야경을 내려다본다. 한양과 같은 사대문을 모두 갖춘 곳은 전국에 많지가 않다. 전라도 대표적 석성인 나주읍성 역시 일제에 의해 사대문이 모두 소실되었다. 청주읍성도 일부 복원이 되어가고 있다.
성벽의 둘레는 최장 1772m에 달하였으나 많은 구간이 훼철되었지만 복원이 진행되고 있다. 동문인 조양문, 외삼문인 홍주아문, 동헌인 안회당, 여하정 등의 건물만이 현존하고 있는 이곳에서의 저녁시간은 문에서 문으로 이어지는 그 역사의 길을 생각해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