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천생태공원의 흰 눈 세상으로 나가다.
어릴 때는 유달리 춥게 살아서 그런지 이불속에 있을 때가 많았다. 어릴 때의 옷장은 천으로 만들어진 옷장이었는데 그 속에는 이불이 있었다. 천으로 된 옷장은 보통 반원 형태의 지퍼를 내리면 나가고 들어갈 수 있었는데 그 속에서 다른 세상을 꿈꾸곤 했었다. 옷장 밖의 새로운 세상을 꿈꾸기도 했었는데 그 장면이 나중에 읽은 책에도 등장하기도 했다. 바로 C.S. 루이스의 나니아 연대기에서였다. 1권은 딱 아이들의 눈높이로 보여주는 세상을 그려냈다.
겨울에는 볼 것이 많이 없어 보이는 곳이지만 눈이 내리면 하얀 세상으로 변하여 마치 영화 속의 그 장면을 보여주는 곳이 청양에 있다. 청양의 지천생태공원은 거닐기에 괜찮은 곳이며 청양을 한 번 방문했다면 산책하듯이 돌아보면 좋은 곳이다.
지천생태공원에 내린 눈을 밟으려고 나왔는데 사람들이 많이 나오지 않아서 발자국은 많이 보이지 않았다. 이날의 지천생태공원은 조명이 나니아 연대기에서 표현하였던 것과 상당히 닮아 있었다. 지천 생태도 볼 수 있지만 봄이 되면 철쭉을 볼 수 있어서 좋은 곳이다.
어느 날 저택은 아니지만 집에 있는 옷장을 통해 나오면 이런 풍경이 펼쳐진다면 어떨까. 올 겨울, 눈이 내리는 순간 삶의 연대기가 시작된다. 내리던 눈이 많이 그치긴 했지만 하늘에서 눈송이가 내리고 있었다. 옷장이라고 하면 숨바꼭질에서 빠지지 않는 장소다.
천천히 설경을 즐기면서 생태공원을 걸어본다. 아직은 어두워지지 않아서 춥고 눈 덮인 공원이 나오는데 곳곳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가로등이 서있다. 소설 속에서 가로등은 신비함을 지닌 가스등으로 표현되지만 이곳의 가로등과 매우 닮아 있다.
가로등은 언제 어디서나 방향을 가르쳐주는 등불과 같은 존재다. 흰 눈 위에 다양한 나무들이 물을 머금고 봄의 꽃을 만들기 위해 준비 중인데 그 중간중간에 붉은색을 띤 갈색 계열의 가로등이 잘 어울린다.
청양의 지천생태공원에 자리한 말무덤은 교월리 말무덤이라고 붙여져 있지만 실제 말을 묻은 무덤이라기보다는 거대한 규모로 만들어져 있기에 커다란 뜻도 포함하는 '말'의 말무덤이라고도 부르고 있다. 옛날부터 이 말무덤 주변은 곡식을 심고 밭도 일구었지만 이 무덤만은 절대 손대지 않았고 항상 신성시 여겼다고 한다.
청양은 사람이 많지 않아서 조용한 곳이지만 눈의 나라로 온 것 같다. 이야기 책 위를 걷는 것 같은 기분 속에 회색빛 하늘, 아름다운 산과, 눈이 내린 풍경이 평화로움을 그려내고 있다. 길지는 않은 시간이지만 이곳을 거닐면서 전에 읽었던 소설도 생각해보고 다시 옷장속으로 들어갔던 그때를 회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