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는 누군가 Feb 03. 2022

풍류의 고장

홍성 결성에 있는 옛 흔적들을 찾아서. 

세대의 시간은 짧다. 지금 옳다고 생각한 것은 후에 의미 없는 일이 될 수도 있다. 사람들은 바로 앞만 보고 옳고 그름을 이야기하지만 세상을 그렇게 짧은 호흡으로 보면 숨이 찰 수밖에 없고 조급하게 된다. 모든 것에는 흥망성쇠가 있다. 오늘 잘되는 것이 계속 잘될 수는 없다. 그렇게 모든 것이 변하지만 보통 사람들은 그것에 익숙하지가 않다. 예로부터 많은 자원과 사람이 몰리게 되면 자연스럽게 술과 풍류가 발달하게 된다. 예전의 방식으로 살아갈 수 없는 때는 반드시 온다. 

사람의 마음은 모두 똑같다. 사람이 모이는 곳에 가서 새로운 기회를 얻으려고 한다. 변화되는 것에 잘 적응하는 사람이 있고 옛 방식을 유지하려는 사람들도 있다. 백제때 결기현(結己縣)이니, 신라 때 결성(潔城)으로 고쳤고, 고려 때 또 결성으로 고친 홍성의 결성면은 한 때 영화를 누렸던 곳이기도 하다. 

지금도 관공서도 사람들이 얼마나 모여 사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얼마 전 특례시로 지정된 수원, 용인, 창원 등은 바로 인구수로 지정이 된 것이다. 결성에는 지금도 옛 결성동헌과 결성향교 등이 남아 있다. 내포와 그 중심 가야산으로 향하던 물길이 삽교천과 천수만, 홍보방조제가 생기면서 막히자 삽교와 해미, 결성은 지역의 역사와 문화는 기운을 다하고 쇠퇴하게 되었다. 

결성동헌은 여러 번 가봤던 곳이지만 이곳을 찾아올 때 결성 칼국수를 먹기 위해 찾아왔다가 결성동헌을 찾아가 본 기억이 난다. 결성 지역은 서해를 배경으로 내포 지역 천수만 중심에 위치해 일찍부터 해양성 내륙 문화가 복합적으로 발달했기에 판소리도 한 축을 이루었다고 한다. 

지금이야 대중가요도 있고 트로트도 있으며 외국의 음악을 쉽게 접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판소리가 대중가요였다. 동헌에서 판소리를 적지 않게 만나볼 수 있었다. 지금과 다를 바는 없다. 악기와 좋아하는 문화의 차이일 뿐이다. 

흰 눈이 가득 담긴 결성동헌의 마당에는 누구도 발길이 닿지 않은 길들이 있다. 시간이 지나면 이런 풍경과 비슷하다. 길을 만들었는데 어느샌가 길이 없어지듯이 새로운 것이 채워지는 것이다. 결성에는 결성동헌을 비롯하여  결성향교(충청남도 기념물 제134호), 결성읍성(충청남도 기념물 제165호) 등이 있으며, 결성농요(충청남도 무형문화재 제20호)가 전승되고 있다.

조선 영조‧정조 때 홍성 결성면 성남리 출신인 최선달(본명 최예운, 崔禮雲·1726~1805) 선생은 판소리의 원조라 불렸다고 한다. 새로운 길을 찾아가듯이 결성을 찾아와서 눈위에 필자의 발자국만 남겼다. 무언가 뿌듯해지는 느낌이다. 

결성동헌에서 결성이라는 지역을 내려다보았다. 가까운 곳까지 물길이 있었지만 지금은 물이 어디까지 왔는지도 모르겠다. 결성이라는 지역의 한자는 結城인데 일본말로 성씨인 유우키로 사용이 되기도 한다. 

결성동헌이 있던 곳에서 아래로 내려오면 형방청이 있다. 말 그대로 형벌을 집행하던 곳이다. 결성읍성 내에는 17개의 관아 건물이 있었으나 지금은 동헌, 형방청, 책실등만이 남아 있다. 지금은 주변으로 신금성에 위치했던 결성읍성 복원을 하고 있다. 

멀리 언덕에 자리한 결성향교의 모습이 보인다. 풍류란 먹고사는 것이 어느 정도 해결이 되고 나서야 비로소 발현이 되기 시작한다. 지금은 홍주성 지역이 홍성군의 중심이지만 결성읍성이 있던 곳도 그와 못지않은 행정구역이었지만 1914년 홍주군과 강제 통합되면서 결성면으로 강등되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태종 이방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