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에 자리한 최명길 묘소에서...
사람들은 자신이 말을 하면서 그것이 참인지 거짓인지 아니면 자기 자신조차 기만하는지 모를 때가 있다. 자신이 맞다고 생각해도 그것이 만들어내는 파급효과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행동하는 사람도 많다. 크고 작건 모든 싸움은 자신을 아는 것에서 이길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긴다. 사람들은 보통 상대방을 먼저 알려고 하지만 그것조차도 제대로 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는 말이 그냥 나온 것이 아니다.
싸움이나 전투 혹은 전쟁은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피하기 위해서는 적이 무게감을 느끼게 해야 한다. 그냥 공허한 평화주의자라던가 이론적으로만 갖추어진 명분으로는 전쟁을 막을 수가 없다. 싸움을 피하는 것이 상책이지만 피할 수 없다면 이기는 방법을 반드시 찾던지 교착상태에 이를 수 있는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 가장 하책은 나도 죽고 상대방도 죽는 동귀어진이다. 치욕스러운 것은 내 주제도 모른 채 명분만 내세우다가 몰살당하는 것이다.
영화 남한산성에서 최명길은 이병헌이 그 역을 맡아서 연기를 했었다. 실리를 선택하며 청나라와 화친을 주도했던 사람이다. 남한산성은 어릴 때 그 근처에 살아서 마실 나가듯이 자주 갔던 곳이다. 석성으로는 방어가 상당히 유리한 입지를 가지고 있지만 오래 버티기에는 너무나 자원이 부족하다. 외부 수혈이 되지 않는다면 내부에서 붕괴되기가 쉽다.
청주에는 남한산성에서 화친을 주도했던 최명길이 잠들어 있는 묘소가 있다. 최명길과 대척점에 있었던 사람은 김상헌이다. 어떤 관점에서 보면 최명길도 옳고 김상헌도 옳다. 누구의 말이 옳은지는 보는 관점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묘소의 입구에서 먼저 필자를 맞이해주는 것은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59호인 최명길 신도비다. 신도비는 전체 높이 4.2m로 숙종 28년(1702)에 세워졌고, 1979년에 비각을 세웠다고 한다. 최명길은 인조 때의 문신으로 양명학자다. 문장과 글씨에도 뛰어났다고 하는데 병자호란 때 청과 화의를 맺을 것을 주장하여 항복문서를 초안했다.
한반도의 지정학적인 여건으로 인해 대한민국은 균형외교를 해야 한다. 정치적인 이해득실에서 판단해야 될 문제는 아니다. 더군다나 지도자라면 편향될 수 있는 신하들의 목소리에 균형점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 그 방향이 맞다면 백성들을 위할 수 있는 길에 힘을 실어야 한다.
묘소로 나아가 본다. 청주 최명길 묘소는 충청북도 기념물 제68호로 지정이 되어 있는데 묘소는 품자장으로 중앙에 호석을 두른 묘가 선생의 묘다. 정면에서 볼 때 서쪽은 첫 번째 부인 안동장씨, 동쪽은 두 번째 부인인 양천허씨의 묘가 자리하고 있다.
살다 보면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걸다시피 하는 사람들을 볼 때가 있다. 특히 남자들이 좀 많은 편인데 굳이 이길 필요도 없는 것에 마치 도박을 하듯이 손모가지를 건다는 둥 쓸데없는 오기를 부린다. 도박을 좋아하지도 않지만 더 중요한 것에 집중하는 것이 의미 있기 때문에 그걸 재미로 하지는 않는다.
남한산성이 역사 속에서 더 많은 화자가 되는 것은 인조의 삼전도 굴욕도 있겠지만 명분과 실리를 가지고 대립하는 두 충신의 대립이 있었기 때문이다. 청과 끝까지 맞서 싸워 대의를 지키고자 하는 ‘김상헌’ vs 치욕을 견디고 청과의 화친을 도모하고자 하는 ‘최명길’ 은 꼭 지켜야 하고 싸워야 할 이유에 대해 말을 하고 있다.
자는 자겸, 호는 지천, 시호는 문충인 최명길의 본관은 전주다. 김상헌은 최명길이 정성 들여 쓴 항복문서를 빼앗아서 찢어 버리고 통곡하면서 말했다. “명망 있는 선비의 아들로 어찌 이런 것을 할 수 있소?” 최명길은 찢어진 종이를 주워 맞추며 말했다. “대감은 찢으나 나는 주워 맞추리다.”
정말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진실된 마음은 아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