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소설쓰기

갯벌의 꿈

새옹지마 - 인생은 파도처럼 쓸려 다니는 것

봉수는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그 노인네가 분명히 돈을 어딘가에 숨겨놓고 옮겨갈 텐데 그저 오랫동안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날짜를 대충 듣기는 했었지만 언제 가져갈지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빌라에서 들었던 커피 다방 레지의 말은 사실처럼 느껴졌다. 형인 봉식이처럼 살고 싶지 않았던 봉수는 여전히 길은 없어 보였지만 이 기회가 마지막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인생은 역시 한방이었다. 동네형이었던 재흥이처럼 도박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 나오기만 하면 하루 일당을 주고 추가적으로 준다는 돈은 기약이 없었다. 그저 능력이 없는 자신을 괴롭히는 사람들만 있었을 뿐이었다.


다방 레지가 대화한 내용 대로라면 분명히 오늘이었다. 그 노망난 노인네의 집은 읍내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봉수는 욕먹을 각오를 하고 빌라에서 말없이 나와서 자신의 전동 킥보드를 타고 집까지 찾아가서 몰래 지켜보고 있었다. 얼마를 지켜보고 있었을까. 뒤에서 오토바이 소리가 들려왔다. 그녀였다. 항상 가슴이 잘 보이는 푹 파인 옷차림으로 읍내를 돌아다니는 박양이었다. 박양이 이곳까지 온 것은 그녀도 목적이 여기에 있을 것이었다.


"오빠, 도착했어, 오늘 3~4시 사이라고 했어?"

"응 그때쯤 일거야. 나한테 말해주지 않아서 몰랐는데 딸내미랑 통화하는 걸 들었어."

"그럼 어떻게 해야 해?"

"우선 지켜보고 있다가 가방을 가지고 나오면 따라가 봐. 아마 딸 집으로 갈 가능성이 높아. 혹시 은행으로 가게 되면 그전에 빨리 알려줘야 해."

"알았어. 확실한 거지 오빠?"

"확실해! 그 노인네가 챙겨둔 돈이 있을 거야. 어디다가 숨겨놨는지 모르겠지만 가끔씩 제정신으로 돌아올 때면 보상받은걸 가끔씩 말한 적이 있었어."

"잘 됐으면 좋겠다. 그러면 나도 고생 끝이고 오빠도 이 촌구석에서 나갈 거 아냐. 그리고 내 마이킹은 확실히 갚아주는 거지?"

"당연하지 그걸 못 갚아주겠어. 충분할 거야."


박양은 누군가와 통화하면서 주변에 경계를 풀지 않고 있었다. 목소리가 들릴 정도의 거리는 아니었지만 눈치로 볼 때 돈과 관련된 이야기였음이 분명해 보였다. 날은 확실했지만 그 돈을 어떻게 빼낼 수가 있는지는 생각을 해봐야헸다. 저 여자도 혼자가 아니라 매일같이 다방을 드나들던 그 동네 아저씨와 연관이 있을 것이었다. 동네 아저씨와 만나기 전에 중간에 돈을 채가는 것이 가장 최선의 대책일 듯했다. 봉식이 형이 알았다면 극구 반대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집에 들어가지 않은지도 몇 개월이 되었다. 봉수에게는 갯벌의 꿈 따위는 없었다.


"조카 그 시간에 맞춰오는 것은 알지?"

"예 비번은 아니지만 좁은 읍내에서 별일이 있겠어요. 같이 김순경도 갈 거예요. 김순경 아시죠?"

"응 잘 알지. 그 친구 성실하잖아."

"제가 이곳에 내려와서 근무하면서 같이 근무조로 돌고 있어요."

"알았어. 아무튼 그 시간에 맞춰서 오면 될 거 같아."

"그럼 그 가방을 누구한테 가져다주면 되는 거예요?"

"내 딸 알지? 복희 말이야. 복희네 집으로 가져다주면 돼."

"가방에 뭐가 들어 있는데요?"

"그건 몰라도 되고 나중에 내가 넉넉하게 사례를 해줄게."

"그래요. 고모랑 제가 남도 아니고 제가 경찰이니까. 믿으시면 돼요."

"그럼 내가 누굴 믿겠어. 다방 레지랑 그 짓거리를 하고 있는 남편이나 도박에 빠진 사위나 똑같은 놈들이지. 내가 속이 터져서 살 수가 없어."

"제가 고모라도 정말 견디기 힘들 것 같아요. 저만 믿고 이제 고모의 삶을 사세요."

"그래 고마워~ 그래도 친척 중에 경찰이 있는 것이 어디야."

"우리 집의 가훈이 정직과 성실이었어요. 제가 괜히 경찰을 했겠어요."


통화를 끝낸 서경사는 모니터 속의 그녀의 반응을 보고 있었다. 개인적인 메시지를 통해 좋은 일이 있을 거라는 이야기를 슬쩍 흘린 상태였다. 여전히 별풍선 선물의 톱클래스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서경 사는 만족스러웠다. 이제 더 여유로운 자신의 삶이 상상되었다. 이 시골구석까지 내려온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스스로에게 계속 질문을 했는데 바로 돈가방 때문이었다. 어차피 고모의 엄마는 자신에게도 할머니였다. 자신에게 제대로 뭔가 해준 것이 없었는데 이렇게 자신에게 기회가 오고 있었다.


빌린 돈마저 신기루처럼 모두 날려버린 재흥은 하루하루가 살얼음을 걷는 것만 같았다. 분명히 자신에게 들어온 패가 다른 사람보다 좋았는데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자신만의 날카로운 눈으로 쳐다봤지만 자신을 속이고 있다는 눈치를 채지 못했다. 결국 막판에서 남아 있는 돈 천만 원마저 날려버리고 3일의 시간을 유예받았을 뿐이었다. 무언가 해야 했다. 집에 들어와서 곳곳을 뒤졌지만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 그런데 그 모습을 지켜보는 여편네가 어딘지 모르게 여유가 있어 보였다고 할까. 평소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폭력의 끝을 보여준 다음에야 여자는 재흥에게 돈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재흥은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를 정도의 모습으로 거실에 누워있는 여자를 뒤로 하고 밖으로 뛰쳐나왔다.


오래된 작은 트럭이지만 그에게 유일한 이동수단이기도 했다. 조급한 모습에 피투성이가 된 손으로 자동차 키를 넣으려고 했지만 마음처럼 쉽지가 않았다. 여러 번 시도한 끝에 드디어 시동을 켠 재흥은 기어를 넣고 출발했다. 장모의 집이 아닌 할머니의 집 방향이었다. 엔진오일을 갈은지가 오래되어서 그런지 트럭은 내야 하지 않는 굉음을 내면서 움직일 수 있었다. 어쨌든 상관은 없었다. 돈만 생기면 이곳에서 나가서 다시는 이곳으로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결심이 갑자기 생겼다.


오래되었지만 한옥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고즈넉한 고택은 이제 옛날의 영화는 뒤로하고 마치 허물어지는 것을 겨우 버티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마당 안으로 들어서자 대청마루에 백발의 노인이 앉아서 오래간만에 느껴본다는 듯이 햇살을 눈을 감고 맞이하고 있었다. 대청마루의 위의 처마에는 언제 매달아 두었는지 모를 홍시가 있었고 방으로 보이는 옆에는 말려서 오래 쓰려고 했던 마늘 두 접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그 아래로는 사용하지 않은지 십 년은 되었을 농기구들이 놓여 있었다. 어이가 없어진 맷돌들이 여러 개가 놓여 있었다. 노인은 말이 없었다. 마당에는 귀룽나무가 심어져 있었는데 잎이 드새지기전에 그 순을 따먹으려는 멋쟁이 새만이 지저귀고 있었다. 할머니는 귀룽나무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언제 해 먹었는지 모를 그 시절의 귀룽나무 새순 나물을 생각해냈을지도 모른다.


할머니는 집의 기둥인 나무를 쓰다듬고 있었다. 오랫동안 농사일로 거칠어질 대로 거칠어진 손에 깊은 주름이 새겨져 있었다. 이제 자신의 역할은 끝이 나고 삶의 마침표를 찍을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그 적막을 깨고 가벼운 차량 소리가 들려왔다. 딸이었다. 그동안 조금씩 모아놓은 돈과 땅 보상을 받았던 돈을 잊고 있다가 얼마 전에 기억이 되돌아온 노인은 딸에게 연락을 했다. 이제 그 돈은 자신에게 소용이 없었지만 난봉꾼 같은 사위 모르게 전해주는 방법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엄마 아직 날이 다 풀리지도 않았는데 나와 있어. 감기 걸리면 어떻게 하려고."

"으응? 몰라. 그냥 나와있었어."

"괜찮아? 밥은?"

"뭐 조금 먹은 거 같아. 나야 이제 신경 쓰지 말고 너나 잘살아."

"아빠도 갑자기 떠나고 나에게 남겨진 사람이라고는 엄마랑 딸뿐이 더 있어."

"그러니까. 잘살라고 하는 거야. 이제 네가 실고 싶은 대로 살아라. 저 가방 가져가면 돼. 얼마 들었는지는 잘 몰라. 그냥 네가 편했으면 한다."

"우리 엄마 갑자기 이렇게 정신이 돌아오니까. 너무 좋다."

"나도 우리 딸 이렇게 보니까 좋네."


대청마루에 앉아서 둘은 그냥 서로의 손을 잡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이 집에서 오랜 시간을 살아왔었고 이곳에서 벗어나지 않고 삶을 이어갔었다. 이제는 이곳에서 떠날 때가 된 것 같았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밖에서 차 소리가 들려왔다. 얼핏 보인 경광등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 서경사가 온 모양이었다. 서경사는 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서경사는 사실 할머니를 많이 보지도 못했다. 치매에 걸렸다는 것도 이곳으로 내려와서 알았다.


"안녕하세요. 할머니 저 서삼용이에요."

"누구? 삼용이? 그게 누구야."

"아이 엄마 큰 오빠 아들 있잖아."

"네 오빠가 아직 살아있어?"

"그 오빠는 죽었지만 그 아들이라고."

"아들이 살아 있다는 거야?"

"아니요. 할머니 제가 할머니 아들의 아들이라고요."

"아~ 그래 잘 살고 있고?"

"예 이곳에서 일하고 있어요."


이런저런 이야기를 잠시 나누다가 서경사는 고모에게 바쁘다는 듯이 눈짓을 했다. 고모는 서경사의 눈짓을 보고 엄마에게 말을 했다.


"엄마 이제 우리 갈게."

"가려고? 있다가 저녁이라도 먹고 가지 그래."

"아니야. 엄마 이제 우리 가야 해. 할 일도 많고 해서 그래."

"그래. 젊은 사람들은 바쁘게 살아야지. 암~ 그래야지."

"할머니 그럼 저 가볼게요."


서경사는 고모가 말한 것처럼 보이는 가방을 들었다. 생각보다 묵직한 편이었다. 가방을 들고 대문을 나가서 경찰차의 뒷좌석에 실었다. 김순경은 뒷좌석에 실린 가방을 보면서 물었다.


"서경사님 저 가방은 뭐예요?"

"아~ 전에 말했지 고모가 그냥 보관 좀 해달라는 게 있어서 한 번 도와줘야 된다고 말이야. 그 가방이야. 뭐 잠깐 내가 가지고 있으면 될 거 같아서."

"그래요? 서경사님 비번일 때 그냥 가지러 오시지."

"오늘 아니면 안 된다고 그러잖아. 그런데 근무를 바꿀 처지도 아니고 해서. 그냥 오늘 온다고 했어."

"뭐 상관은 없겠죠. 조용한 마을이니까요."


서경사와 김순경이 탄 경찰차는 천천히 한옥 옆의 공간에서 차를 돌린 뒤에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마침 그곳에 도착한 재흥은 가방을 들고 나온 서경사를 볼 수 있었다. 한 발 늦었다는 생각이 잠시 들었지만 차를 따라가기로 했다. 거리를 두고 조심스럼 게 자신의 차로 따라가기 시작했다. 그 뒤를 박양이 타고 있는 오토바이와 봉수가 탄 전동 킥보드가 줄줄이 뒤를 이어 따라갔다. 그들의 뒤로 멋쟁이새가 하늘로 날아올라 같은 방향으로 날아갔다. 경찰차와 그 뒤를 작은화물차, 오토바이, 전동퀵보드가 줄을 이어가는 다소 이상한 행렬에 멋쟁이새만이 지저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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