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소설쓰기

갯벌의 꿈

일장춘몽(一場春夢)- 그렇게 사라지는 것

멀리 보이는 것이 경운기인지 해무인지 명확하지가 않았다. 그만큼 거리가 가늠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그렇게 잡힐 것 같았던 돈도 사라져 버리고 없었다. 이제 그의 뒤에는 돈 받으려고 온 야차 같은 놈들만 있을 뿐이었다. 지난 한 시간이 마치 한 달같이 느껴졌다. 어쩌다 이지경이 되었을까. 재흥은 간신히 훔쳐낸 가방을 박양에게 빼앗겼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저 가방은 뭐예요?"

"아~ 저거 신경 쓰지 않아도 돼. 고모가 잠깐 보관해달라고 해서 집에 가져다 놓으려고."

"그래요?"


김순경은 슬쩍 뒷좌석을 살펴보고 다시 정면을 바라본 후 폰을 들어서 시간을 확인했다. 교대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전에 내려받은 드라마가 생각이 났다. 교대가 되면 집에 가서 그 드라마를 이어서 볼 생각에 잠시 기분이 전환이 되었다.


"교대시간이 된 거 아세요?"

알고 있다는 듯이 김순경을 바라보며 서경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알고 있어. 내가 사무실에다가 내려줄 테니까. 김순경은 퇴근해."

"어디가시게요?"

"어~ 나는 볼일이 조금 남아 있어."

"예. 그렇게 할게요."


서경사는 50km 정도의 빠르지 않은 속도로 운전을 하며 가고 있었다.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파출소에 김순경을 내려다 준 후 지역에 자리한 드라마 세트장으로 향했다. 최근 드라마 세트장은 일제강점기 근대시기의 풍경을 배경으로 드라마를 제작하기도 했었다. 서경사는 드라마 세트장 안에 자리한 극장 안의 공간에 이 가방을 숨겨두려고 생각을 하고 있었다. 밤이 되면 그 가방을 들고 사라지리라는 생각에 잠시 마음이 들뜨기 시작했다. 고모가 부탁한 것이 있었지만 그녀의 말대로 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100여 미터의 거리를 두고 따라가던 재흥은 드라마 세트장으로 들어가는 경찰차를 지켜보고 있었다. 조금 더 뒤에서 떨어져 있던 박양과 봉수도 조용히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운 서경사는 차의 뒤 문을 열고 가방을 들고 세트장의 입구 쪽으로 걸어갔다. 경찰 유니폼을 입은 서경사를 보고 입구에서 근무하는 여직원은 아무 말 없이 통과시켜줬다.


"한 명이요."

재흥은 매표소로 가서 입장 티켓을 구매하려고 만 원짜리를 내밀면서 말했다. 매표소 직원은 말없이 만 원짜리를 받고 티켓과 거스름돈 4,000원을 창구 아래로 밀어주었다. 마스크와 선글라스로 무장한 박양도 시간차를 두고 표를 구매했다. 최근 핫플레이스로 알려져서 그런지 사람들이 적지 않은 편이었다. 이들에게 신경을 쓰는 사람은 많지가 않았다. 봉수는 박양을 지켜보고 있다가 표를 구매하고 따라 들어갔다.


서경사는 가방을 들고 주변을 돌아보면서 거리를 걸어서 안쪽으로 들어갔다. 경찰복을 입고 있기는 했지만 이곳을 찾은 사람들은 큰 관심을 두지는 않았다. 이곳저곳에서 인증숏을 찍는 사람들과 오래간만에 나들이를 온 사람들의 모습에서 소소한 행복이 배어 있었다. 일부 건물은 카페나 전시관, 의상 대여소, 화장실 등으로 활용되고 있지만 사용되지 않는 건물들이 대부분이었다. 그중에 극장은 스크린과 30여 석이 들어선 공간으로 만들어져 있었지만 세트장으로만 활용되고 있었다. 평소에는 자물쇠로 닫혀 있지만 미리 자물쇠의 열쇠를 받아둔 터였다.


"어떻게 됐어?"

수화기 너머로 남자가 다급한 듯이 물어보았다.

"오빠 와이프 조카 있잖아. 그 경찰이라는 사람에게 건네줬는데 드라마 세트장으로 들어가서 따라 들어왔어."

"거기는 왜 간 거야?"

"몰라. 같이 일하는 사람 내려주고 이곳으로 왔어."

"그래? 그놈이 다른 꿍꿍이가 있구먼. 여편네가 그놈은 신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데 지 발등 찍은 거지. 아무튼 잘 지켜보고 있어. 내가 있다가 갈게."

"응 알았어. 내가 잘 지켜볼게."


박양은 평범하게 보이기 위해서 오래되어 보이는 군용 차량을 배경으로 사진도 찍고 얼핏 본 적이 있는 드라마의 한 장면을 직은 가게에 앞에 서기도 했다. 곁눈질로 서경사를 계속 지켜보았지만 계속 드라마 세트장의 이곳저곳을 오갈 뿐이었다. 박양과 서경사를 같이 지켜보던 봉수도 옛날 담배를 파는 분위기의 가게 앞에 멈춰 섰다. 신탄진이라는 담배의 앞에는 존슨 미국 대통령 각화 내외분이라고 쓰여 있었다. 오래 전의 담배인 것처럼 보이는데 지역명이 사용된 것이 특이하다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담배가 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곳은 모두 금연이었다. 담배를 피기 위해 나갔다가 오면 이들을 놓칠 것 같아서 참아야만 했다.


"아~ 진짜 오늘까지 준비가 된다니까."

"네가 한 말 중에 지킨 것이 언제 있어."

"이번에는 확실하다니까. 내가 웬만하면 이렇게 말 안 해."


재흥은 슬쩍슬쩍 서경사를 보면서 목소리를 낮춰서 통화를 하고 있었다. 계속 빌린 돈을 내놓으라고 추궁하는 사채업자와의 대화는 항상 불편했지만 받지 않을 수는 없었다. 받지 않아서 생기는 문제가 훨씬 크기 때문이다.


"분명히 말했어. 오늘까지 안 가져오면 신장 한 개랑 눈 하나는 빼는 거야. 난 소중한 자산을 죽이지는 않아."

"내가 말했잖아. 처가 쪽에서 돈이 준비가 된다니까. 보상받은 돈이 있는데 그걸 와이프에게 준다고 했다니까."

"뭐 나도 대충 들은 것은 있으니까. 이 마을에서 돈 있다는 사람이 여럿 있지."

"내가 좀 바쁘니까. 돈이 구해지면 내가 연락할게."


전화를 끊은 재흥은 이곳에 살면서도 드라마 세트장은 처음 와보았다. 거의 도박장에서 살다시피 한 그는 다른 것에는 관심이 전혀 없었다. 얼마나 이곳에 머물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곳을 둘러볼 필요가 있어 보였다. 서경사가 이곳 어딘가에 가방을 숨겨두려는 것처럼 보였다. 세트장으로 만들어졌지만 생각 외로 완성도가 있어 보였다. 이 정도 갖추어두려면 돈이 적지 않게 들어갈 듯했다. 어릴 적에 보았던 TV 속의 세상처럼 보이기도 했다. 적당하게 거리를 두면서 잠겨 있는 문도 당겨보기도 하고 밀어 보기도 했다. 일부러 부서진 것처럼 만들어놓은 건물도 있고 한국전쟁 때 사용했을 자동차와 오토바이도 보였다. 심지어 지금도 굴러갈 것 같은 자전거도 안에 있었다.


이날 따라 해무가 짙어지기 시작했다. 봉식은 매일 하던 대로 어구를 챙기기 시작했다. 돈이 마을에 풀리고 나서 오히려 사는 것이 팍팍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술에 취해서 음주사고를 일으키는 사람들을 비롯하여 전에는 보지 못했던 다방이라던가 단란주점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생전 보지도 못했던 큰 술집에는 여자가 십 수명이 들어와서 일하기 시작했다. 이 마을 답지 않게 사람으로 인해 화려해지고 있었는데 그 변화가 달갑지가 않았다. 이날은 읍내에 있는 드라마세트장에서 건물복구를 위한 일거리도 있어 바쁜날이었다.


어구와 검은색의 가방을 챙긴 봉식은 경운기를 타고 바다로 나아갔다. 마을은 북적거렸지만 조금만 벗어나니 새로 돋아난 초록 솔나무 이파리는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싱그런 향기를 내뿜어 솔바람을 만들어주고 있었다.


"봉식이 오늘도 나가는겨?"

마을의 어르신이 지나가는 봉식이를 보면서 말을 붙였다. 80대 후반의 나이에도 여전히 어부의 일을 하고 계신 분이었다."

"예 그럼 뭐해요. 나가서 뭐라도 잡아야죠."

"그래. 성실한 게 좋지. 요즘 여기도 많이 변했어."

"그것도 사람 따름이죠."

"그려~ 오늘도 수고 혀."

"예 들어가세요."


이제는 경운기 소리도 익숙해져서 그런지 노랫소리처럼 들리기도 했다. 마을 분위기가 어쨌든 간에 바다로 흘러내려가는 물조차 깨끗한 곳이다. 위에서 내려오는 물길이 아래 바다로 흘러들어 가고 있었다. 봉식은 물길이 어디로 가는지 천천히 쫓아가듯이 바다로 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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