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년간의 상처와 17년간의 투쟁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으로 인해 정말 많은 것이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우크라이나를 가까이서 보면 비극적인 전쟁이지만 멀리서 보면 우리 식탁물가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 가지 예로 들면 한국사람들이 외식으로 가장 많이 소비하는 치킨값도 올라갈 수 있다. 전 세계 해바라기씨유를 가장 많이 생산하는 러시아의 수급 불균형으로 인해 기름값이 두배 이상 뛰었다. 게다가 이맘때 파종해야 하는 밀등을 파종하지 못하면서 올해 하반기에는 본격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전쟁을 일어나는 곳이나 전쟁을 대비하기 위해 훈련장으로 사용되는 곳은 모두 일상을 평온하게 보낼 수가 없다. 화성시의 매향리라는 곳이 바로 그런 곳이었다. 오랜 세월 동안 폭음에 찢겼던 매향리는 해방이 왔어도 계속 화약냄새를 맡으면서 살아왔다. 봄이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꽃 향기가 없었던 곳이다.
화성시의 매향리라는 곳은 여러 번 가본 적이 있는데 경기도의 신도시로 조성되고 있는 곳과 달리 전혀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다. 폭탄이 떨어졌던 곳이나 사용되었던 다양한 크기의 폭탄들이 그곳에 있었다. 화성시의 매향리의 봄이라는 책을 읽어본다.
매화꽃 향기가 피어나는 이 시기에도 비행기 날던 전쟁터의 공간에서 가슴 조마조마하게 살아왔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평화를 뜻하는 말로 유대교의 살롬(sālom), 그리스의 에이레네(eirēnē)와 로마의 팍스(pax)등으로 대신하고 있다.
화성의 매향리라는 곳은 어업이나 농업으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매향리는 지금도 오랜 시간의 흔적을 지우지 못하고 있다. 비행체가 공기 중에서 마하 1을 넘는 초음속으로 비행하면 비행체 주위의 공기에는 충격파(shock wave)가 생성되면서 공기의 성질이 급격히 변화하게 되는데 그 지역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평소에는 보지 못했던 수많은 총알과 폭탄을 볼 수 있는 곳이다. 군대에도 다녀왔지만 한꺼번에 이렇게 많은 폭탄을 보는 경우는 드물다. 매향리에도 지금 봄이 찾아왔다. 2005년 미 공군의 훈련장소였던 쿠니 사격장이 완전히 폐쇄되고 폭격 소음이 사라진 후 17번째 맞이하는 봄이기도 하다.
가끔씩 낮게 나는 헬기 소리에도 신경이 쓰이는데 음속을 돌파하여 날아가는 전투기의 소리는 차원이 다르다. 오랜 시간 평온하게 살 수 있는 권리를 잃어버렸던 매향리 주민들의 이야기며 아픈 스토리이기도 하다.
“하지만 인간은 패배하도록 만들어지지 않았어.”노인은 말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소설 '노인과 바다'에서 등장한 대사다. 전쟁은 참혹한 결과를 만든다. 그렇지만 전쟁을 대비하는 데에도 많은 희생이 수반된다. 매향리의 매향이 매화향기가 아니겠지만 적어도 봄의 향기를 맡을 수 있는 자유는 누구에게도 제약받지 않아야 한다. 매향리, 평화가 오다는 책은 그런 가치를 생각하게 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