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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Aug 04. 2016

금산의 맛과 은행나무

인삼이 시작된 금산의 삼계탕

더위가 최고조에 이른 초복, 중복, 말복의 공통점은 몸에 좋은 음식을 찾는다는데 있다. 일본 사람들은 몸에 가장 좋은 보양식으로 장어를 찾지만 한국 사람들은 삼계탕을 찾는다. 가장 대중적이었지만 최근 대부분 삼계탕 가격이 12,000원을 넘으면서 복날이 아니면 가볍게 먹기에는 좀 부담스러운 가격이 된 것도 사실이다. 삼계탕에서 가장 중요한 주인공은 닭처럼 보이지만 닭보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보면 인삼이다. 인삼이 삼계탕 속에 안 들어간다면 몸보신이라는 의미는 사라진다. 


전국적으로 삼계탕 집이 없는 지역은 없다. 닭은 빠르게 자랄뿐더러 생산성도 좋아 온 국민이 좋아하는 음식의 재료로 사용이 된다. 삼계탕에 들어가는 인삼이 처음 시작된 때는 지금으로부터 약 1,500여 년 전으로 올라간다. 지극한 효심을 가진 강처사라는 사람이 금산 진악산 근처에서 살았는데 어머니가 몸져눕자 진악산 관음굴에 가서 낫기를 밤낮으로 빌었다고 한다. 이에 감복한 산신령이 빨간 열매가 달린 풀이 있는 곳을 가르쳐주며 그 뿌리를 달여 먹이라고 이른다.  

금산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삼계탕집으로 발길을 해봤다. 이곳은 인삼을 삼계탕 안에 넣을 뿐만 아니라 인삼을 따로 갈아서 탕 안에 넣어주는데 국물의 진하기가 다른 곳과 다르다. 이 음식점의 삼계탕에는 이 땅에서 나는 각종 약재와 금산 특산물인 인삼이 들어가 있다. 인삼은 1,500여 년 전에 시작되었지만 삼계탕의 역사는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다. 일제 강점기 당시에 부잣집에서 시작된 닭을 끓여 넣은 탕의 음식문화가 대중에게 확산되면서 지금의 삼계탕 모습으로 자리 잡았다. 

삼계탕에 사용되는 닭은 수탉이 아닌 태어나서 자란 기간이 한 달이 안된 닭을 이용한다. 그래서 영계백숙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살이 연하다고 하여 연계 백숙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영계는 병아리에서 벗어났지만 아직 앍을 낳아본 적이 없는 젊은 닭이다. 삼계탕을 요리할 때 닭고기 속에다가 찹쌀을 넣는 것은 양기의 진수가 쌀로 흡수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 그릇 깨끗하게 먹어보았다. 

금산에는 아주 오래된 은행나무들이 있는 곳이 여러 곳 있는데 그중에서 충청남고 금산군 남이면 석동리 709에 있는 보석사 은행나무는 천연기념물 제305호로 지정될 만큼  그 수명과 모양새가 뛰어난 나무다. 근처에 있는 보석사를 창건할 때 조구 대사와 다섯 제자가 심은 여섯 그루가 자라면서 얽혀 한 그루가 되었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나무다. 

멀리서 보기만 해도 그 모양새가 남다르다. 1,000년을 훌쩍 넘는 세월을 견뎌온 노거목 다운 위세이다. 줄기의 수축이 죽지 않고 살아서 올라간 것도 특이하다. 이 근처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보석사 은행나무를 재난을 예고하는 신목이라고 믿고 지금까지 잘 관리해오고 있다. 

보석사 은행나무는 무병장수의 기원을 하는 것으로도 유명한데 이렇게 오래된 나무를 보면 무언가 마음이 평안해지고 때론 설레기도 한다. 인간의 수명이 100년이 채 안 되는 것과 비교하면 이 나무가 겪어온 1,000년이라는 세월이 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것 같다. 

은행나무 옆에는 큰 바위가 하나 있는데 누가 새겼는지 몰라도 글이 써져 있다. 금산군은 이 은행나무 밑에서 대신제를 지다는데 대신제에서는 산신제, 목신제, 당산굿이 펼쳐진다. 대신제가 열릴 때면 그 행사에 참가하여 소원을 비는 사람 들로 이곳은 인산인해를 이루기도 한다. 

이 은행나무는 암나무로 지금도 엄청난 양의 은행을 맺는다. 은행나무의 열매는 그렇게 친근한 냄새가 나지 않는데 바로 밑으로 떨어지는 은행의 특성상 다른 동물들이 먹지 못하게 하기 위해 진화한 결과라고 한다. 이 은행나무의 열매인 은행을 몸에 지니면 모병 장수의 덕을 얻게 된다고 알려져 있다. 


금산은 먹는 맛과 보는 맛이 있는 곳이다.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가 명산을 찾아다니며 기도를 올렸는데 이곳 금산에서 백일기도를 한 후에 임금에 오를 수 있었다고 한다. 당시 자신이 왕의 자리에 오르면 산 전체를 비단으로  덮어 주겠다는 약속을 했으나 산 전체를 비단으로 덮을 수 없어서 산 이름에 비 단금(錦) 자를 넣어 금산(錦山)이라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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