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에 자리한 원효 깨달음 길 5코스
벚꽃이 내리고 음악이 흐르면~ 난 나이를 먹고 가게 된다. 매년 설날을 기준으로 하지 않고 벚꽃이 피었다가 지는 것을 한 해로 삼아도 문제 될 것은 없다. 이제 전국 어디를 가더라도 벚꽃이 대부분 떨어져서 엔딩이라는 단어가 절로 생각난다. 오늘도 바람은 서산의 용현 계곡을 살포시 어루어만지고 지나가지만, 그것에 귀를 기울여 바람의 속삭임을 들을 자는 이제 우리뿐이 없게 되었다.
풍경화를 그리다 보면 과연 자연에 존재하는 디테일한 것을 제대로 기억하는지 스스로 되물어볼 때가 있다. 분명히 본 것 같은데 본 것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 분홍색이라고 생각했는데 핑크빛 살색에 가깝다라던가 그런 것들이 많다.
서산의 마애여래 삼존상이 자리하고 있는 용현계곡의 마지막 벚꽃엔딩을 보기 위해 찾아가 보았다. 물체가 떨어지는 일은 태초부터 있었다. 벚꽃도 질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만유인력의 법칙에 따라 땅으로 떨어지게 된다.
용현계곡을 찾아온 사람들이 적지가 않았다. 이곳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모두 원효 깨달음을 이어가기 위해 온 것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파전, 막걸리 등의 먹거리가 이곳에 있다. 한가로이 하루를 보내기에는 괜찮은 곳이다.
마애여래 삼존상을 보지 않은 분이라면 올라가서 한 번 보고 내려오는 것을 추천한다. 국보 제84호로 지정된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 삼존상(瑞山龍賢里磨崖如來三尊像)의 크기는 본존 여래상 높이 2.8m, 보살입상 높이 1.7m, 반가상 높이 1.66m이다. 태안반도에서 서산마애불이 있는 가야산 계곡을 따라 계속 전진하면 부여로 가는 지름길이 이어지게 되는데 원효가 걸어갔을 것으로 생각되는 길이다.
계곡 아래로 내려와서 아직 지지 않은 벚꽃을 올려다본다. 지구라는 별은 특별한 사건이 없는 한 우리에게 마음의 고요를 허락하는 곳이기도 하다. 긴 시간 속에서는 특별한 사건이 일어날지는 몰라도 한 개인이 평생 동안 겪게 되는 자연의 급격한 변화는 거의 없다.
잠시 계곡의 아래에 내려갔다가 위에 올라와서 이정표를 바라본다. 용현계곡 입구에서 보원사지로 가는 길목의 중간에 서산 마애삼존불이 자리하고 있다.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 삼존상은 탁월한 보편적 가치(OUV, Outstanding Universal Value)를 가지고 있어서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보는 사람의 각도와 마음 상태, 햇빛이 비치는 시각에 따라 부처님의 미소도 각기 다르게 보인다고 하는데 원효가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깨달음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연상된다.
조금 더 위쪽으로 올라오면 보원사지가 나온다.
보원사는 백제시대에 창건된 사찰로 통일신라시대 화엄십찰 중 하나였으며, 고려시대에는 1000여 명의 스님이 수행할 만큼 대찰이었던 곳이다. 충남도와 서산시에 따르면 문화재청은 보원사지에 대한 1~3단계 종합정비계획을 추진 중인데 330㎡ 규모의 방문자센터와 관광안내소, 화장실 등이 조성되는 3단계 사업은 다소 지연돼 2024년쯤 본격 착수될 전망이다.
이곳에 사찰 건물들이 자리하고 있었을 때 규모를 상상해보면 공주의 마곡사와 비슷하던지 더 큰 규모였을 것이라고 상상된다. 많은 것을 채우려는 것은 모든 것을 잃는다는 것과도 연결되어 있다. 세상에는 적당하게 조절한다는 것이 가장 어렵다는 것을 안다면 중심을 잡을 수 있다.
용현계곡에서 더 안쪽으로 들어오면 용현 자연휴양림이 나온다. 서산의 용현 자연휴양림은 서해안고속도로와 대전-당진 고속도로에서 20분 거리에 자리하고 있다. 내부 지형이 완만해 노인과 아이를 동반한 가벼운 산행을 하기에 좋은 곳이다. 이제 벚꽃 엔딩이 지났으니 다른 걸 채워볼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