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결같음

은진 송 씨가 모여 살던 이사동 유교 민속마을

무언가를 배우고 익히는 것을 꾸준히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사람과의 소통을 하는 것도 한다고 하지만 여전히 어려운데 그걸 쉽다고 말하는 것은 남의 말을 귀로 소리만을 듣는 것에 불과하다. 언어가 무엇인지는 알지만 그 뜻은 헤아리지 못하니 그것이 어떻게 소통인가. 귀로 듣는 것을 넘어서 마음으로 듣는 것은 다른 사람의 말을 자기 방식대로 이해하는 것이며 그 너머에 기로 듣는다는 것은 마음속에 자기의 주장을 비운 채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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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에 숨겨진 마을 중 이사동이라는 곳이 있다. 이사동에는 은진 송 씨가 1392년 이후인데 이사동에 은진 송 씨들이 씨족을 이루면서 모여산 것이 무려 510여 년을 훌쩍 넘겼는데 대전에서 대표적인 유교사회를 이룬 집성촌 이리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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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이라는 것은 원래 집에서 출발한다. 지금처럼 교육시스템이 잘 갖추어지지 않은 과거에는 집에서의 교육이 기반이 되어 사회로 진출되고 과거에 급제하던가 관료생활을 하게 되었다. 지금도 집안에서의 교육은 정말 중요하다. 집안의 교육이 기반이 되어 남다른 경제관을 가지고 있는 이스라엘도 그런 전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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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동에는 수려한 자연경관을 간직하고 있는데 분묘가 무려 1,000 여기에 기념물로 송요년, 송남수, 송웅서 묘역이 있구 문화재자료로 월송재와 추원재가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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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사우당은 동구 이사동에 위치한 비지정문화재로 입향조인 송성준의 조상 송국택(1597~1659)의 호를 붙여 사우당으로 세운 것이다. 1652년 인조 20년에 송촌에 지었던 것을 그 후 약 300년이 지난 뒤에 후손들이 선생이 일시 사시던 이곳으로 1961년에 이전을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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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가 그렇게 이사동을 한 번은 방문해보길 권했는데 이제야 찾아가 본다. 배움이라는 것은 한결같음과 같이 가야 한다. 한결같음이 없는 사람이 배움을 진득하게 하는 것이 쉽지가 않다. 자신이 변화하는 것에 가장 큰 무게를 두는 사람은 지금에 머물러 있지 않다. 마치 고인물이 썩듯이 썩지 않게 자신을 계속 흐르는 물속에서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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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의 중심이 되는 공간에는 한천이 있다. 물론 지금은 사용하고 있지는 않겠지만 한천은 송성준(1737~1802)이 만년에 이사동에 거주하먼서산 아래에서 나오는 샘물을 약으로 여겨 마시고 자신의 호로 삼은 데서 유래가 되었는데 그의 호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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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나 물결은 쉽게 요동치기 마련이라 더해지고 빠지는 것이 생겨나 쉽게 위험에 빠질 수 있다고 한다. 말 역시 그렇다. 말이 전해질 때는 사람의 입장에 따라 반드시 더해지고 빠지는 것이 있다. 그래서 사람의 말보다는 글에 더 무게를 두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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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사란 가장 위대상 스승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우리 인간이 모범으로 삼아야 할 위대한 인물의 유형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 사람을 찾을 수 있다는 자체도 큰 축복이다. 사물을 차별하지 않고 대하며 타고난 본성을 중시한다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원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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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곳에 은진 송 씨의 묘역을 알리는 비가 세워져 있다. 이곳에는 재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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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을 품은 길이라는 이곳은 이사동 유교민속마을 누리길이다. 묵사공재실, 선무량재실, 집의공재실, 첨사공재실, 근암공재실, 취웅당재실, 감찰공재실, 수촌공재실, 송월재재실, 절우당, 사우당, 추원재, 월송재등 은진송씨의 흔적들과 그 계파들의 재실이 보존되고 있다. 과연 지금도 한결같음을 유지하고 있는지 생각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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