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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Jul 18. 2022

한산: 백의종군(白衣從軍)

이순신이 지나쳐간 청수역과 강정-쉼터

지금은 잘 알려진 이순신의 난중일기라는 이름을 붙여준 사람은 본인이 아니다. 정작 본인은 임진일기, 계사 일기, 갑오 일기, 을미 일기, 병신 일기, 정유 일기, 무술일기 등의 이름으로 분책한 것이었다. 정조대에 이르러 이 초고본을 난중일기라고 붙였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비로소 기록의 성격이 뚜렷해지고 이순신 장군이 어떤 길을 걸었는지 잘 알려졌다. 풍전등화의 위기라도 소인들은 자신의 이득을 위해 다른 사람이 해를 끼치지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일기를 쓴다는 것은 자신을 드러내는 일이다. 일기를 꾸준히 쓴 사람이 바르지 않을 수가 없다. 자신이 한 말과 행동이 어떤 결과를 만들었는지 혹은 어떤 결과를 만들지를 바라보지 않을 수가 없다.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는 지난 2013년에 기록유산에 등재되었는데 주로 하루 일정과 사적-공적인 만남, 개인적 일과 감정을 빠르게 흘려 쓴 초서체에 담았다. 하동의 이곳은 이순신 장군이 백의종군할 때 지나쳐갔던 곳이다. 

1597년 (선조 30, 정유년)에 이순신 장군은 백의종군을 위해 권율 도원수부가 있는 합천으로 가는 길에 청수역 시냇가의 정자인 강정에서 말을 쉬게 하였다. 청수역이 이 부근에 있었던 것으로 보이나 정확한 위치는 알 수가 없다. 역이라고 함은 조선시대에 공적인 임무를 위해 왕래하는 관리들에게 숙소와 역마를 제공하기 위해 설치된 곳이다. 화사하게 피어 있는 백일홍이 유독 아름답다.  

역사 속에서 잘 알려진 위대한 사람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기록이 꾸준히 쓰인다면 그것만으로 위대한 기록으로 남겨질 수 있다. 일기는 모든 사람이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도전이다. 쓰인 기록은 기억할 수 있게 만들고 기억은 곧 역사가 된다. 역사 속의 이야기는 잘 알려진 사람의 이야기로 국한되지 않는다.  

잠시 정자에 머물면서 몸도 불편했던 이순신의 백의종군길을 생각해본다. 이곳에서 다시 길을 떠난 장군은 이날 늦어서야 단성과 진주의 경계에 있는 박호원의 노비 집에 도착하게 된다.  

멀지 않은 곳에 옥종면이 나온다. 옥종면도 이순신이 지나쳐갔던 길이기도 하다. 이곳에는 청룡리 은행나무가 있는데 그 크기 상당하다. 나무는 한가운데 가장 굵은 줄기가 있고 그 주위에 8개의 큰 줄기(아들나무)가 있으며 이들 둘레에는 다시 14개의 작은 줄기(손자 나무)가 둘러싸고 있다. 

이곳뿐만이 아니라 주변의 마을 사람들은 이 나무를 수호목으로 여기며 2000년도부터는 은행나무 축제일을 정하여 마을 사람들이 참여하여 여러 가지 문화행사를 개최하고 있다고 한다.  

이순신 장군은 난중일기를 쓰면서 술 마신 이야기 세상에 대한 한탄 등을 모두 써놓았다. 자신의 힘든 시기를 술로 버텼던 것으로 보인다. 난중일기에는 술 마신 이야기가 참 많이 등장한다.  물이 흘러가는 곳에서 잠시 조용한 분위기를 누려본다.  

지금은 이렇게 우물이 있지만 이곳은 이순신 장군이 전황을 살피기 위해 길을 나서 하룻밤 유숙한 곳이라고 한다. 집주인 이희만은 본관이 재령이고 자를 구연이라고 하였다. 그는 1570년 (선조 3)에 치러진 식년시에 합격한 76세의 지사였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여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노력한다는 것을 보여줬던 사람이다. 이순신 장군은 비가 오는 궂은 날씨에도 단성 현감, 진주목사 등을 만나 상황 파악과 대책 수립을 위한 숙의를 했다.  

모든 것이 흔들릴 때가 기회라는 말이 있다. 세상의 평화가 꾸준했으면 좋겠지만 모든 것이 차면 다시 비워지고 비워지면 다시 채워지고 평온함은 위태로워지는 것이 세상일이다. 백의종군에서 이순신 장군은 많은 것을 비우면서 다시 채웠을 것이다. 임진왜란 초기에 한산대첩으로 전쟁의 향방을 바꾼 이순신 장군은 백의종군을 한 후 더 부족한 가운데 명량대첩이라는 전설을 만들어낸다. 일기는 자신을 알게 해 주며 나아가서는 상대방도 꿰뚫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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