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과의 조우
아이는 자신도 모르게 심장박동수가 계속 느려져가고 있었다. 코와 입으로 들어온 물은 산소와 폐가 만나게 하는 것을 방해하고 있었다. 아이의 의식은 천천히 멀어져 가고 있었다. 아이에게는 아직 남아 있는 잠수 반사(潛水反射)로 인해 혈액을 심장과 뇌로 공급하는 동시에 호흡을 중지시키고 심장박동수를 줄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아이의 몸은 더 깊은 물로 가라앉고 있었다.
아이가 물에 빠져 수면에서 사라지고 있던 그곳은 여름이 되면 사람들이 적지 않게 찾는다는 아름다운 절경의 공간이었다. 뒤로는 절벽이 있고 아래에는 맑은 물이 흘러내려오고 있지만 안쪽에는 생각보다 깊은 수심이 있는데 아래에서 휘돌아감아 흐르는 물줄기로 인해 간혹 익사사고가 나기도 했다. 마을에서 청년들이 나와서 익사사고를 막기 위해 수상구조대를 운영하기도 했지만 이날은 우연하게 개인적인 일로 자리를 비웠던 것이다.
신체를 보호하기 위해 천천히 뛰는 심장으로 인해 아이의 눈은 흐릿하지만 물 위로 비친 하늘색은 마치 물 위에서 바라보는 수면의 물결처럼 보이고 있었다. 그 순간 수면의 물결에 갑자기 깨지듯이 부서져나갔다. 위의 절벽에서 누군가가 아이가 있는 근처로 뛰어내린 것이었다. 절벽에서 뛰어내린 그녀의 입수 자세는 군더더기 없이 깔끔했다. 수영복을 입고 있지는 않았지만 반바지를 입고 있었던 그녀의 다리는 마치 일부러 모은 것처럼 붙어 있었는데 빠르게 입수해서 아이가 가라앉고 있는 곳까지 접근했다.
미동도 하지 않았던 아이의 눈에는 어렴풋하게 여자의 얼굴이 보였다. 그녀는 손을 내밀어 아이의 오른손을 잡았다. 자신이 손을 내밀어 잡았는지 그녀가 와서 잡았는지는 명확하지는 않았다. 자신을 물 위로 끌고 나가는 그녀의 옆모습의 실루엣은 아름다웠다. 그렇게 물 위로 나온 아이는 다행히도 뇌손상 없이 회생할 수 있었다. 부모는 아이를 구해준 그녀를 찾으려고 했으나 어디로 갔는지 찾을 수가 없었다.
정민은 가끔씩 악몽이면서 운명 같은 그런 꿈을 꾸곤 했다. 물에 빠져 죽을뻔했다는 그때부터 적지 않은 시간 동안 물에 빠지는 꿈을 꾸었지만 나이가 들고나서는 그런 꿈을 꾸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인가 그 꿈을 꾸기 시작한 것이었다. 어릴 때의 기억 때문인지 몰라도 정민은 가능하면 물 근처를 가는 것은 금기시했다. 어쩌다가 친구들이나 가족들과 물놀이를 가도 안전요원이 반드시 있는 실내외 수영장에서 성인이 아닌 아이들이 노는 수영장에서만 놀았다. 친구들이 놀리기도 했지만 그런 건 상관이 없었다. 어차리 물에 빠져 죽는 것보다는 안전하게 살아남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었다.
물에 빠져 죽을 뻔 아이는 십수 년이 지나 어느새 대학생이 되었다. 대학교 2학년이 된 정민의 전공은 항공학과였다. 친구들은 허리 이상에 오는 물속에 들어가는 것을 그렇게 무서워하는 사람이 하늘을 어떻게 날겠냐면서 놀리기도 하지만 상관이 없었다. 기계를 만지는 것은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맨몸으로 무언가를 하는 것은 정말 위험한 행동이라는 신념 아닌 신념을 가지고 살아갔다. 그런 정민에게 하나 풀지 못한 숙제가 있다면 바로 그날 자신을 구해준 그 여자를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그 위험한 물속으로 뛰어내린 그녀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정민아. 오늘 흠뻑쇼 축제가 있다는데 갈 거야?"
"아~ 그 축제?"
"응. 물에 빠지지 않고 뿌리는 거니까 괜찮잖아."
"그 정도까지는 아냐. 나 목욕탕도 갈 수 있어. 그냥 허리를 넘어가는 물에 들어가는 것이 싫을 뿐이야."
"그럼 갈 거야?"
정민의 오래된 친구 석진은 여름만 되면 역마살이 도는지 몰라도 여행하고 축제 등을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했다. 정적인 자신보다는 에너지가 넘치는 느낌이라서 가끔씩은 석진이 하는 대로 그냥 따라다니는 것이 편할 때가 있었다.
"뭐 이번 주는 별일이 없으니까. 리포트도 이미 다 써놨고 갈 수 있을 것 같아."
"내가 그럴 줄 알고 이미 표를 끊어놨어. 가서 시원한 맥주 마시면서 시원하게 물벼락 맞아보는 거야."
"그래. 알았어. 마지막 수업 끝나고 교문에서 보자."
정민은 갈아입을 옷을 가져오지 않은 것이 조금 걸리기는 했지만 멀지 않은 곳이기도 해서 그냥 가려고 마음을 먹었다. 마지막 수업시간은 항공역학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물과 공기의 압력에 닮은 점이 있는 베르누이의 정리를 응용하는 시간이었다. 공학적인 마인드가 넘쳐나는 정민에게는 그런 법칙이나 계산이 익숙했다. 세상을 그렇게 계산할 수 있다고 하면 물속만 아니라면 무엇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수업이 끝나고 교문에서 석진과 만난 정민은 지하철을 타고 축제장으로 이동을 했다.
"정민아, 오늘 제대로 놀아보는 거야."
"그래, 뭐 재미있겠지."
"진짜라니까. 오늘 오는 가수가..."
석진의 말이 갑자기 음소거되듯이 들리지 않았다. 지하철의 객차 안에 그녀가 보인 것이었다. 꿈에서라도 잊을 수 없었던 그 느낌과 실루엣이 그대로 보이는 그녀가 바로 2미터쯤 거리에 서 있었다. 분명히 어릴 때 자신을 구해주었던 그녀임에 분명했다. 시간이 지나 얼굴에는 시간의 흔적이 있었지만 그렇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그런 그녀가 정거장에서 내리려고 하고 있었다. 빨리 따라가야 했었다.
"석진아 오늘 미안해. 너 혼자 가서 놀아." 뭐라고 떠들던 석진에게 정민은 말을 던지고 바로 그녀를 따라갔다. 퇴근시간이어서 그런지 지하철 역에는 사람이 많은 편이었다. 자신의 갈길을 가려는 사람을 제치고 그녀를 놓칠까 봐 그 뒤를 바로 따라갔다. 약속이 있는지 몰라도 그녀 역시 발걸음이 빠른 편이었다. 지하철 개찰구에 카드를 댄 그녀는 출구를 나와서 언덕 쪽으로 걸어서 올라갔다. 그녀의 어깨에는 백팩이 있었는데 가방의 크기가 작지는 않은 편이었다. 그녀의 종착점은 언덕의 꼭대기에 자리 잡은 건물이었다. 국제수영장이라고 쓰여 있는 그 건물은 평소에는 가지 않았을 그런 곳이었다. 그렇지만 그녀가 왜 이곳으로 들어가는지 궁금했다.
빠른 걸음으로 건물 안으로 들어갔던 그녀는 수영장의 여자탈의실로 들어가 버렸다. 거기까지는 따라 들어갈 수 없었던 정민은 앞에 데스크에 가서 직원에게 말을 걸었다.
"저 물어볼 게 있는데요."
"예. 물어보세요." 정민은 손가락으로 여자 탈의실 방향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저곳으로 들어간 큰 가방을 든 170cm가 넘는 여성분은 뭐하시는 분이에요?"
"예?" 직원은 약간 의심스러운 눈으로 정민을 쳐다보았다.
"아~ 저분이 하는 운동이 궁금해서요."
"저분은 수강생은 아니에요."
"그럼요?"
"강사예요. 하이다이빙 강사요."
"하이다이빙이요? 그게 뭐예요?"
"말 그대로 높은 데서 다이빙하는 거예요."
"그런 걸 왜 하는 거예요?"
"올림픽 안 보셨어요? 다이빙 종목이 있어요. 그런 스포츠를 일반인들이 배우는 거라고 보면 되는 거예요."
"그런 운동을 일반인들이 한다고요?"
"예, 수영만큼 대중적이지 않지만 꾸준히 하시는 분들은 있어요."
"그래요? 예 감사합니다."
직원과 대화를 한 정민은 마침내 그녀의 직업을 알게 되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결정을 해야 했다. 뜬금없이 어릴 때 구해줘서 고맙다고 말하는 것도 이상했다. 그렇지만 이대로 다시 돌아가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우선 안으로 들어가 보기로 했다. 실내수영장은 아이들이 놀 수 있는 곳만 가보았지만 성인들의 수영장은 잘 가보지 않았다. 별일이 없겠지만 그냥 가까이 가는 게 불편했었다. 정민은 남자 탈의실을 통해 조심스럽게 들어갔다. 국제수영장의 규격을 갖춘 수영장답게 큰 규모의 수영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수영을 하고 있었다. 저 끝에 다이빙을 할 수 있는 시설이 눈에 띄었다. 높은 천장고에 걸맞은 시설물이랄까. 무언가의 압도감이 느껴졌다. 저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미련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모두 옷을 헐벗고 있는 길목을 지나서 다이빙을 하는 곳까지 가는 시간은 길게 느껴졌다. 이곳에서는 옷을 입고 있는 것이 오히려 이상해 보였다.
수영장을 걸어서 가던 정민은 드디어 스쿠버 다이빙과 하이다이빙을 하는 수조에 이르렀다. 절대 들어가고 싶지 않은 물 깊이를 보여주는 그곳은 말 그대로 파란색의 공포 그 자체였다. 매트 같은 것을 깔아놓고 몸을 풀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경계선에서 마치 다른 곳을 보는 것처럼 있었지만 그곳에서 운동하는 그 누구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앞서 안쪽으로 들어갔던 그 강사가 나왔다. 평범한 티셔츠에 스포츠웨어를 입은 그녀는 나이는 들었지만 옛날의 그 모습 그대로였다. 서로 간에 익숙한지 가볍게 목례를 하던지 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을까. 시끄럽게 들리던 음악소리가 끝이 나자 준비운동을 시작했다. 적지 않은 시간의 운동은 마치 군인들의 유격훈련처럼 보이기도 했었다. 물에 빠지는 것이 너무 위험하기 때문에 몸을 단련시키려는 것인가? 란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그녀의 모습은 덤덤하면서도 평온해 보였다. 어떻게 말을 걸어야 할지 고민을 하고 있을 때 그녀가 말을 걸어왔다.
The 다이브 1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