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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Aug 14. 2022

여름의 맛 묵밥

인생의 멋진 일은 대부분 후반부에 있다. 

사람들은 행복이라는 것을 빠르게 만나려고 생각한다. 행복이라는 것은 정량제처럼 정해진 것도 아니고 사람마다 행복의 척도는 모두 다르다. 행복은 물질이 될 수가 없고 물질이 되어서도 안된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자신의 관점으로만 행복을 판단하려고 한다. 행복은 아주 자주 소소한 일이 반복될 때 그 충만함이 채워질 수가 있다. 마치 여름의 맛 묵밥처럼 슴슴하지만 먹다 보면 괜찮은 것처럼 말이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찾아갔지만 안성에서 유명하다는 묵밥 집이었다. 한 끼의 밥값이 생각보다 빠르게 올라가는 요즘에는 밥 먹었냐는 말은 상대방을 챙겨주는 말이기도 하다. 보통 밥은 한자어로 반(飯)이라 하고 어른에게는 진지, 왕이나 왕비 등 왕실의 어른에게는 수라라고 부른다.  

슴슴한 묵밥이 맛이 좋기 위해서는 방법이 많지 않다. 김치가 맛이 좋아야 한다. 잘게 송송 썰어 넣은 김치와 도토리묵이 어우러져야 맛이 좋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너무 많이 익은 김치도 안되고 싱싱한 김치도 묵의 맛을 조화시키기가 쉽지 않다. 

다람쥐가 숨겨놓고 상당수의 도토리를 못 찾는다는 도토리는 이렇게 묵밥으로 탄생한다. 묵밥은 무더위를 해소할 수 있는 시원한 냉국을 서비스하자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해서 어떤 항공사에서는 기내식으로 묵밥을 내놓기 시작했다고 한다.  

도토리는 예로부터 구황식물로 이용되었는데, 주로 묵으로 가공해서 먹는다. 옛 속담에 ‘마음이 맞으면 도토리 한 알을 가지고도 시장을 멈춘다.’라는 것이 있는데, 이는 아무리 가난하여도 서로 마음이 맞으면 모든 역경을 잘 극복할 수 있다는 의미다. 

도토리묵을 먹고 나면 밥을 말아서 먹으면 된다. 여름에 시원한 맛이 특징이다. 도토리묵은 헐벗고 굶주렸던 한국전쟁 기간 동안 많은 사람들이 먹기도 했었다.  고려의 충렬왕이 흉년에 백성이 굶주린다 하여 반찬을 줄이고 궁중 주방에 도토리를 가져오게 하여 맛을 보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여름의 맛 묵밥을 먹고 나니 이제 풍경이 보이기 시작했다. 내리는 비속에 잘 관리된 정원은 나름의 만족감이 들게 한다.  

옛날에는 기근에 구황 식품으로나 양식으로 쓰던 도토리를 요즈음은 별식인 도토리묵밥이 되었다. 살짝 이국적인 느낌이 나게 만든 정원을 거닐면서 좋은 생각을 해본다. 묵밥의 재료로 사용되는 도토리 같은 작고 보잘것없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감동이야말로 한 사람의 운명을 바꾸고, 삶을 풍요롭게 할 수도 있다. 

이곳을 둘러보다가 마지막 문구가 눈에 뜨였다. 코앞의 욕심보다 길게 보고 살아온 사람이라면 인생의 멋진 일은 대부분 후반부에 있다는 말이 와닿을 수 있다. 무엇이 중요한지 알고 무엇이 소중한지 아는 것은 나이를 어느 정도 먹고서야 느낄 수 있다. 어린나이는 기회가 많지만 그 가치를 알기에는 너무나 어설프다. 삶이 공평하다는 것을 다시 보게 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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