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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Oct 06. 2022

소로리 볍씨

15,000년 전 고대 벼의 흔적이 있는 소로리 볍씨 마을

요즘에는 경제와 관련된 일을 하지 않아도 환율이라던가 물가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다. 모든 물가는 올라가고 있지만 쌀값만이 떨어지고 있다. 식량주권의 관점에서 본다면 쌀은 상당히 중요한 곡물임에는 분명하다. 벼는 벼과에 속하는 식물로서 20여 종의 품종이 있으나 일본형·인도형·자바형의 3형으로 분류하는 오지라 시티바가 가장 많이 재배되고 있다. 중국 남부 호남성 옥섬암 동굴유적에서 B.P. 1만 1천년(서기전 9000년)의 볍씨가 출토된 바 있다고 하는데 그보더 더 오래전에 볍씨가 발견된 곳이 있다. 

청주에 가면 소로리 볍씨 마을이라는 곳이 있다. 소로리는 인류 최초의 볍씨가 발견된 곳이라고 한다. 1997년 발굴을 통하여 후기 구석기 토탄층이 형성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 시간이 무려 15,000년 전의 볍씨로 고대 벼와 유사한 벼가 출토되었다. 저 조형물은 바로 그 볍씨를 형상화한 것이다.  

소로라는 마을 이름은 공자와 연관이 되어 있다. 세조가 속리산을 거쳐 온양 온천으로 가는 길에 이곳을 지나게 되었다고 한다. 알다시피 세조는 피부병으로 무척 고생하였기에 좋다는 온천을 자주 다녔다. 그 장면은 광대들 : 풍문 조작단에서 그려진 바가 있다. 

세조가 이곳을 지나가다가 어디선가 글 읽는 소리가 잔잔히 들려왔다고 한다. 이를 들은 세조가 공자가 태어난 노나라에 견줄만하다고 해서 "소로"라는 이름을 지어줬다고 하다. 옛날에는 소로리 들판을 흘러 미호천으로 흐르는 냇가에는 버드나무가 무성해서 "버드실"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렇지만 지금은 농지정리로 없어지고 마을 입구에 왕 버드나무 한 그루만이 남아 있다. 버드나무가 심어져 있는 곳은 그대로 지명을 사용한 곳이 적지 않다. 대전의 버드내아파트라는 이름도 그렇게 지어진 것이다.  

소로리 마을에는 고택도 있는데 영산 신 씨의 200년 종택이다.  영산 신 씨(靈山 辛氏)는 경상남도 창녕군 영산면을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로 하나라 2대 왕 계의 차남인 신진(莘鎭)의 후손이 艸를 제거하여 신(辛)을 성으로 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고택을 돌아보고 다시 황금색으로 물들어가는 논을 보러 나가본다.  

인류가 농업을 시작한 것이 약 1만 년 전이라고 하는데 선사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재배해서 먹고살았을까. 

논에 임시로 볏단을 쌓아놓는 노적가리에서부터 국가 공공의 곡창(穀倉)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쌀의 저장시설이 있다. 볍씨가 발견된 곳이니만큼 소로리 쌀상회에서는 쌀을 다양하게 활용하여 마을기업의 형태로 운영하고 있었다.   

쌀은 다양한 과정을 거쳐서 생산되고 우리의 밥상에 올라오기도 하고 식당에 가서 한 공기의 밥으로 나오기도 한다. 벼를 수확, 탈곡하면 곡실(또는 정조, 조곡)과 볏짚이 분리되는데 쌀의 외부형태, 내용 성분 및 호화 특성은 품종 및 재배방법에 따라 다양하지만 대부분이 밥을 짓는 데 이용된다. 

쌀은 여전히 중요하고 미래에도 한국인에게 중요한 먹거리원이기도 하다. 

볍씨의 DNA 분석에 따르면 현재의 재배 벼, 유사벼와는 39.6%의 낮은 유전적 유사성을 드러내 현대의 벼로 자리하기까지 구조적 변화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척도로써 소로리 볍씨를 보고 있다. 

마을의 공동공간이기도 한 이곳은 마을 사랑방 역할을 하는 곳이라고 한다.  

운동을 하고 점심식사를 할 시간이 없어서 쌀이 들어간 음료로 대신하기 위해 구입해본다.  우리가 흔하게 보는 쌀이고 볍씨이지만 소로리 볍씨는 인류 생명문화유산이자 생명의 씨앗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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