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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Oct 10. 2022

가벼운 음식 (輕洋食)

서양과 동양의 만남이 있는 안성의 맛

동양과 서양의 역사를 살펴보면 음식의 변화도 같이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불과 수십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칼질을 해서 먹을 수 있는 음식인 돈가스는 마음을 먹어야 도전하는 음식이었다. 지금은 가벼운 서양 요리라는 경양식이 대부분 사라지고 소의 부위를 사용하는 스테이크가 많은 사람들에게 대중적인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음식에 대한 향수는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다른 곳을 갈 때면 그런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곳을 찾아보곤 한다. 

경양식을 먹기 전에 우선 안성에 있는 안성객사를 방문해 보았다. 안성객사는 안성시내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 그 입지로 인해 조선 초기 이전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 안성객사는 1908년 6월 객사와 동·서익헌이 공립 안성 보통학교의 교사校舍로 사용되었다. 이후 1932년 이건移建되어 군郡 도서관으로 사용되다가 1946년부터는 안성 명륜여자중학교 교사로 이용되었다. 본 건물은 1995년 전면 해체 수리되어 현재 위치에 옮겨 복원된 것이다. 

중앙의 정청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주심포계柱心包系 맞배집의 안성객사는 동익헌은 정면 4칸, 동측면 3칸이며, 서익헌은 정면 3칸, 서측면 2칸인데 변형 축소되었던 것을 읍지 등 문헌에 기록된 칸수를 참조해 복원해두었다. 

안성객사는 규모가 작은 편은 아니다. 일제강점기에 일제는 한국의 고유한 문화자산을 필요에 의해 마음대로 전용하였다.  

객사를 보았으니 이제 식사를 하기 위해 안성시내로 향해본다. 안성시는 경기도에서 작은 도시지만 다양한 문화가 어우러진 곳이기도 하다. 안성시의 역사적인 중심지였던 죽산군은 고구려 개차산군(皆次山郡)이었고 신라 경덕왕이 개산군(介山郡)으로 고쳤다가 신라 말에는 죽주(竹州)로 불렸다고 한다. 후고구려를 이끌었던 궁예를 잠깐 부하로 뒀던 호족 기훤의 본거지가 죽주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경양식을 하는 이 집은 백 년 가게로 지정이 된 곳이다. 서양식을 간소화해서 먹기 시작한 것은 일제강점기때문터다. 일본에서는 한반도보다 먼저 서양식을 도입했는데 화양식(和洋食)이라고 불렀다. 광복이 되어서도 이런 스타일의 음식은 상류층들만 먹을 수 있다가 대중화가 된다. 

이런 스타일의 설탕은 정말 오래간만에 본다. 각설탕은 무언가 오래되어 보이는 찻잔에 커피를 내리고 거기에 두 개쯤 아니면 달달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네 개쯤 넣어서 먹어야 할 것만 같다. 

경양식은 나름의 코스요리를 지향한다. 보통은 수프와 빵이 먼저 제공이 되는데 이곳은 양송이버섯을 주원료로 직접 만들어 내놓는다. 이 음식점에서 먹을 경우 코스요리를 먹으면 후식까지 잘 나온다. 고급 코스로 알려진 경양식은 1980년대까지 당시 돈으로 1만 원에 7가지 코스요리를 먹을 수 있는 서울역 그릴이 대표적이기도 했었다. 

수프를 먹고 나면 나오는 소스가 뿌려진 야채를 먹으면 된다. 아삭함이 괜찮은 곳이다. 이곳은 인기가 많은지 식사시간에 오면 대기시간이 있다. 안성시까지 와서 경양식을 먹고 싶은 사람이 필자뿐이 아닌 모양이다.  

오므라이스와 돈가스가 같이 나오는 단품 메뉴를 주문했다. 말 그대로 경양식이지만 맛은 생각만큼 가볍지는 않다. 경양식집은 일반 분식 수준의 메뉴가 아니라 좀 더 고급화, 전문화의 길을 걷는 전략을 통해 살아남은 것이 사실이다. 1970~1980년대를 재현한 드라마 등에서는 특별한 날 부모님이 자녀를 데리고 가서 사 먹이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필자는 기억에 없다. 

아무튼 특별하지 않은 날이라도 먹을 수 있는 것이 오늘날의 경양식이지만 경양식을 하는 집들은 많지가 않다. 몸은 생각보다 가볍지는 않지만 가볍게 먹다 보면 가벼워지는 날도 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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