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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Oct 11. 2022

입신양명 (立身揚名)

김천의 이름을 붙였다는 의미의 괘방령 장원급제길 

어떤 삶을 사는 것이 좋은 것인가. 어떤 삶을 선택할 수 있을까. 어떤 삶이 나에게 어울리는 삶인가. 이 질문에 명확하게 대답을 할 수 있을까. 잘 사는 것처럼 보이는 삶이라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보이지 않는 이미지이며 상상 속의 삶이다. TV나 사람들의 입으로 옮기는 이야기들은 가상의 이미지이다. 우리는 누군가의 삶이 행복한지에 대해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알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좋은 것만을 받아들이고 불편한 진실을 보려고 하지 않는다. 

경상북도의 김천이라는 도시는 문경이라는 도시와 이미지가 묘하게 겹친다. 문경이 사과로 유명하다면 김천은 포도로 유명한 도시다. 두 도시다 한양으로 가는 길목에 있어서 과거를 보러 가는 사람들에게 익숙한 길이기도 하다. 문경에 문경새재가 있다면 김천에는 괘방령이 있다.  

김천의 괘방령은 경북 김천시 대항면에서 충북 영동군 매곡면을 잇는 고갯길이다. 조선시대에 과거를 보러 다녔던 길이라고 한다. 김천에서 올라가는 길목은 괘방령과 추풍령이 있는데 추풍령으로 갔던 선비들은 추풍낙엽처럼 낙방했다고 해서 이 길을 선호했다고 한다.  

고속도로로 김천을 오가면 알 수 없는 이 길은 장원급제길이라고 부르고 있다. 조선 선비들이 정성을 다해 기원하였던 이곳의 옛 정서를 기억하고 과거 급제한 사람의 귀하길에 어사화를 꽂고 풍악을 올리며 마을에 인사를 다니던 그 분위기를 재현해두었다고 한다.  

조선시대만 하더라도 양반들은 조상들이 많은 재산을 물려주지 않았다면 입신양명 외에 먹고살 수 있는 길은 거의 없었다. 농사나, 어업 등에 종사하는 것은 당시의 상식으로는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로지 과거에 급제하는 것 외에 길이 없다는 것은 그만큼 어려운 길이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괘방령을 오가며 과거를 보러 갔던 사람과 과거에 급제했던 사람과 낙방했던 사람들은 이 길을 오가며 주막에 머물렀을 것이다. 선비들이 자신의 이름을 날릴 수 있는 방법은 과거에 급제하는 방법도 있지만 든든한 재산을 바탕으로 성리학 이론을 공부해서 후학들을 많이 길러내는 방법도 있었다. 퇴계 이황의 호에서 퇴는 후퇴한다는 의미다. 정계로 나간 시간보다 낙향해서 있었던 시간이 많았기에 그런 호가 붙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퇴계 이황의 집안은 상당한 재산을 가지고 있었기에 삶에 여유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괘방령은 대전과 충청도에 사는 사람들에게도 알게 모르게 영향을 미친다. 괘방령을 중심으로 물이 흘러내려오다가 금강과 낙동강의 분수령이 된다. 북쪽으로 흐르면 금강이 되고 남쪽으로 흐르면 낙동강이 된다.  

임진왜란 전까지만 하더라도 평범한 양반 집안의 똑똑한 남자가 여유 있는 처가의 여자와 만나 결혼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남녀의 차별이 거의 없었으며 재산의 분배에서도 동등했던 시기였다. 사회가 잘못된 길로 가게 되는 것은 짧은 시간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렇지만 한 번 잘못 들어서게 되면 쉽게 바뀌지 않는 것이 차별이다. 

괘방령이 입신양명을 위해 과거를 보러 가는 길이었다면 추풍령은 과거에 급제한 후에 관료들의 길이었다고 한다. 장원급제길이라는 이름이 붙여져 있는 괘방령을 걸어보며 삶의 선택으로 인한 자신의 길은 어떻게 이어질지에 대해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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