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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Oct 19. 2022

파아란 하늘

햐안 구름이 물에 비친 청양의 모덕사  

세상을 조용하게 지켜보고 있으면 그 속에 끝을 알 수 없는 지극히 오묘하고 지극히 변화하는 만물의 원리가 담겨 있다. 청명한 가을하늘에 땅 사이에 높고 넓은 것과 바람처럼 오고 가는 것이 있다. 어떻게 보면 기묘하고 어떻게 보면 신기할 때가 있다. 지극히 깨닫기 위해 무언가를 노력하고 배우다보면 세상의 변화를 느낄 때가 있다. 변화는 계절의 변화와 함께 다가오기도 한다.  

청명한 하늘이 저수지에 그대로 비추어지듯이 보일 때 고종황제가 그사람의 덕을 흠모(艱虞孔棘慕卿宿德)했다는 청양의 모덕사로 향했다. 조선시대 대학자이며 의병대장인 면암(勉菴) 최익현(崔益鉉)의 항일투쟁과 독립 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1914년 창건된 사당인 모덕사는 앞의 문구에서 모(慕)”자와 “덕(德)”자를 취한 것이다. 

조선말기의 학자였던 최익현이 인생의 전기를 마련한 것은  벽계(蘗溪)에서 강학 중이던 화서(華西) 이항로(李恒老)를 만나면서 부터다.  50대의 완숙기에 이른 이항로는 가장 열정적으로 학문을 연마했던 그의 문하에서 배출된 걸출한 제자들로 말미암아 뒷날 화서학파는 전국적 문파로 성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렇게 날이 좋은 날 학문과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에 딱 좋은 때다. 면암 최익현은 1852년 10월 청주 한씨와 혼인하였다. 청주 한씨로 대표적인 사람은 인수대비로 1469년에 자신의 둘째 아들인 자을산군(성종)이 왕위에 등극하게 하며 조선시대에 한 획을 그은 사람이기도 하다. 

 매년 4월 13일 항일의거기념 면암 최익현의 추모제가 열리는 모덕사의 현존하는 건물로는 영당(影堂)을 비롯하여 고택과 중화당·장서각(藏書閣)·춘추각·유물전시관 외에 관리사무소가 있다.

지난 11일 목면 송암리 소재 모덕사에서 면암 최익현 선생의 항일 거의와 생애를 기리는 가을 추모 제향을 봉행했는데 선비충의문화관은 청양군 목면 송암리에 있는 모덕사를 역사·문화·교육·체험·관광공간으로 바꾸는 사업도 진행될 예정이다. 

일제강점기를 맞이하지 않게 하려고 노력을 했던 면암 최익현 선생은 결국 일제의 육군이사(陸軍理事)로부터 3년 유형을 선고받았으며 일본의 대마도로 끌려가게 된다. 그 뒤 1907년 1월 1일 새벽 옥고를 견디지 못하고 74세를 일기로 마침내 옥중 순국하였다. 일본과 전투를 하지 않았다는 정치인의 말에 분통이 터지며 저 세상에서도 웃지 못할 듯 하다. 

고종(高宗)이 최익현 선생에게 내린 '고종 밀유(高宗 密諭)'에 따르면 '어지럽고 걱정스러움이 가득한 상황에서 경의 높은 덕망을 흠모한다. 짐이 장차 자리(관직)를 마련할 터이니 함께 위기를 구제하라'라는 것이 주요 내용이 담겨 있다. 

덕보다 경제적 이득이 우선시되는 이 시대에 과연 바른 길에 대한 의문이 들 수 밖에 없다. 자신의 쾌락이나 그럴듯해보이는 것에 대한 비중을 더 둔다면 과연 자신의 삶은 온전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고 하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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