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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Nov 14. 2022

방법: 재차의

사람이 한 짓은 멀리 날아간 부메랑처럼 언젠가는 온다. 

사람들은 오랜 시간 삶과 죽음에 대한 생각을 하며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왔다. 우리는 의식을 가지고 미래를 생각하고 사후를 고민할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이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 진화하면서 인간은 본능보다 더 멀리 볼 수 있는 자신의 운명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귀신이라던가 사후의 존재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대륙마다 혹은 문화권마다 만들어왔다. 한국에서는 귀신을 소재로 한 수많은 영화는 바로 그런 고민의 일부 산물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자신이 선하다고 믿고 살아간다. 자신이 아무리 욕심이 많고 다른 사람의 이익을 해치는 행동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의 선함을 믿는다. 즉 자신의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한다는 의미다. 그래서 정의라는 것이 정말 모호한 것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악은 존재한다고 믿으며 악은 징벌을 받을 것이라는 기대를 하면서 살아가는 것도 사람이다. 

영화 속에서는 고려부터 조선 전기까지 인물, 역사, 문학, 제도, 풍속, 설화 등에 대한 기록을 담은 용재총화 제3권에 등장하는 요괴의 일종으로 `여기 있다` (在此矣)는 뜻을 지닌 검은손의 되살아난 시체를 의미하는 재차의 (在此矣)가 등장한다. 이를 조종하는 죽음의 저주 한자 이름과 사진, 소지품으로 죽음에 이르게 하는 저주의 능력인 방법(謗法)이 결합된다. 모두의 주목 속에 미스터리를 추적하는 기자 임진희가 진행한 인터뷰에서 범인은 되살아난 시체 `재차의`에 의한 3번의 살인을 예고하고, 첫 번째 살인이 예고된 날 엄청난 수의 `재차의` 군단은 무차별 공격을 하기 시작한다.  

영화 속에서 기본 뼈대를 이루고 있는 것은 선악이다. 악을 저지른 기업가를 어떻게 징벌해야 하는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법은 공평하지 않은 것은 누구나 인정하고 있다. 명확해 보이지만 법은 모호하고 모호한 것을 해석하는 것은 돈이 많이 들어갈수록 그 결과가 달라진다. 법으로 응징할 수 없는 사람을 응징하기 위한 악은 과연 정당화될 수 있을까. 선과 악은 서로를 보완하고 때론 서로를 이끌어주기도 한다.  

과거 퇴마록이라는 소설이 유행했던 적이 있다. 그런 분야의 소설을 좋아하는 X세대라면 퇴마록은 많이 읽어보았을 것이다. 모든 사람들에게는 각자의 사연이 있다. 그 사연은 어떻게 해소되느냐에 따라 세상은 부드럽게 흘러갈 수도 있고 꽉 막혀서 결국 극단으로 치달을 수 있다. 

영화 속에서는 인도네시아의 주술사이며 흑마술사를 뜻하는 두꾼 Dukun이라던가 시체(nekros)와 점술(manteia)이라는 단어가 결합된 네크로맨서 Necromancer, 국민 참여형 국어사전인 `우리말샘`에 `주술을 쓰다`의 옛말로 `방법 하다`가 기록되어 있는 방법도 등장한다. 항상 말하는 것이지만 선천적인 악인은 없다. 상황이 그렇게 만들 뿐이지만 사람은 그 상황이 닥쳐봐야 본래 모습을 알 수 있다. 선악은 그렇게 갈라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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