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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Nov 17. 2022

난장판의 고장

물들이고 싶거든 먼저 물들어라. (和光同塵)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이나 단어에 대한 고정관념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려고 한다. 최근의 빈곤 포르노에 대한 이슈 역시 그러하다. 포르노라는 단어는 성적인 것을 노출하여 돈을 버는 산업의 대명사이다. 포르노 산업은 지금도 유효하고 미래에도 여전히 있을 것이다. 육체적인 노동 대신에 은밀한 부위를 노출하는 것을 업으로 하기 때문에 금기시하는 것도 있다. 그런데 빈곤과 결합되면 조금 다른 의미가 된다. 다른 사람의 아픔이나 고통, 빈곤 등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이 마케팅으로 활용하여 자신의 이미지를 다르게 만들고 나아가서는 금전적인 이득까지 노리는 것을 빈곤 포르노라고 한다. 즉 다른 이들의 빈곤을 자신의 이득으로 연결시키려고 하는 것이 빈곤 포르노의 단면이다. 

난장판이라고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긍정적인 이미지보다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조금 더 크다. 난장이라는 의미는 여러 사람들이 뒤엉켜 떠들거나 덤벼서 뒤죽박죽이 된 곳을 의미하는데 그런 판이 벌어지는 곳이 난장판이다. 보통은 전통시장이 서던 곳을 난장판이라고 하기도 한다. 기지시라는 곳은 당진의 한 마을인데 서울로 갈 때에 기지시를 걸쳐 한진 나루를 통해 가기도 했던 장이 섰던 곳이다. 

2022 기지시 줄다리기 축제가 열렸던 기지시에는 기지시 줄다리기 박물관이 자리하고 있다. 기지시에서 열렸던 줄다리기의 의미와 협동 혹은 함께했던 삶들에 대해 엿볼 수가 있다. 전통적인 벼농사의 문화권에서는 줄다리기가 자리 잡아왔다. 한국의 줄다리기 게임을 전 세계로 알린 드라마도 오징어 게임도 있다. 서양인들은 어떤 관점에서 그 게임을 보았을까. 

틀못을 흔히 둠벙이라고 부르는 연못을 의미하며 한자로는 기지라고 한다. 틀못은 기지시줄다리기에 사용되는 거대한 줄을 만드는 줄틀을 보관하는 연못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줄다리기는 줄을 만드는 것부터 협동에 대한 의미를 담고 있다. 줄을 줄틀에 걸어 각 방향에서 동시에 닿는 힘의 작용과 반작용을 이용해 세 가닥의 중줄로 큰 줄을 꼬기 때문에 여타 줄다리기 줄보다 두 배 가까이 무겁고 튼튼한 줄이 탄생하게 되었다고 한다. 

기지시줄다리기 박물관의 안으로 오면 줄 난쟁이 열렸을 때 사람들이 함께하던 모습들을 재현해두었다. 기지 시장의 행사는 인근 마을 주민들이 참여하는 줄다리기였다. 윤년이 드는 해마다 길이 약 200m, 지름 1m, 무게 40t에 이르는 거대한 규모의 줄을 제작하고, 인근 마을을 활성화하려는 행사였기 때문에 상인들의 지원이 있었다고 한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는 당연히 많은 물자가 오고 간다. 줄 난장 한 번 하면 3년 먹을게 나온다고 하였으며 난장이 서면 양조장 샘이 마를 정도였다고 한다. 그 형태는 다르지만 어떤 방식으로든지 간에 사람이 많이 모이게 하는 것은 지역의 활성화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기지시가 자리한 충남 당진군 송악읍은 천혜의 조건을 가진 쌀 생산지이기도 하다. 못이라는 뜻의 지와 시장이라는 뜻의 시가 합쳐진 기지시는 주변의 물산이 모여드는 곳이다. 바닷물이 깊숙이 들어오던 곳이어서 당연히 장이 자연스럽게 섰다. 

전형적인 농촌마을이기도 한 기지시마을은 공동 노동 조직이 자연스럽게 발달할 수 있었다. 농촌에서 벼를 재배한 후 생기는 부산물인 짚은 신발부터 가마니, 지붕 등 수많은 곳에서 활용이 되었다. 매년 재배하고 매년 부산물이 생기니 무언가를 하려고 했던 것이 아니었겠는가.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줄을 만들고 줄난장이라는 큰 행사를 치루고 나면 줄이 남는다. 사용한 줄은 영험하다고 믿었기 때문에 각 지역마다 독특한 방식으로 처리했다고 한다. 대부분 사용한 줄은 끊어가거나 태웠으며 큰 강을 낀 지역에서는 물을 떠내려 보내 재액을 떠나보낸다는 의미를 가진다고 한다.  

줄은 남녀 간의 관계처럼 암줄과 숫 줄로 구분이 되는데 비녀장이라는 통나무를 끼워서 연결하게 된다. 새끼줄 수 백가닥을 먼저 꼬아, 이를 다시 합쳐 꼬아서 큰 줄을 만든다. 그리고 줄을 다릴 때 몸체에 해당하는 몸줄에 사람이 잡아당길 수 있도록 곁줄과 젖줄을 달아맨다. 

줄다리기란 농경사회의 문화에서 협동과 나눔의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기지시라는 곳에서 열리는 줄 난장은 풍요로운 농산물을 교환하고 함께 누리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자신의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바랐을 것이다. 이곳에는 사람들의 소원을 적은 소원지들이 짚에 매달려 있다. 

누군가에게 어떤 것을 함께하고 싶으면 먼저 하라는 말이 있다. 자신은 하지도 않은 채 누군가에게 권한다면 그것이 마땅하겠는가. 노자의 도덕경 56장에는 화광동진이라는 구절이 나온다. 친해질 수도 없고 소원해지지도 않으며, 이롭게 하지도 않고 해롭게 하지지 못하며 귀하게 할 수도 없고 천하게 할 수도 없다. 빛을 부드럽게 하여 속세의 티끌과 함께하다 보면 깊고 그윽해질 때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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