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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Dec 06. 2022

겨울연가

안성 죽산성지에 그려지는 겨울의 연주곡

시간이 지나야 사랑하는 사람과의 기억이 어떠했는지 느낄 수 있을 때가 있다. 연가(戀歌)라는 의미는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워하며 부르는 노래다. 사랑하는 사람을 잊어야 했고 다시는 돌아보지 않아야 했던 공간이 있다. 안성시의 죽산이라는 곳에 가면 죽산성지가 있다. 고려시대에 원나라 사람들이 쳐들어와서 진을 치면서 죽주를 방어하는 죽주산성(竹州山城)을 공략하기 위해 진을 쳤던 자리이다. 다른 종족인 오랑캐가 진을 쳤던 곳이라고 하여 이진(夷陳) 터라고 불렸다. 

순조 때 본격적으로 박해가 시작된 천주교 박해는 대원군 때에 절정을 이루게 된다. 고종시대에 외국인은 이해할 수도 없고 공존할 수도 없는 대상이었다. "서양 오랑캐가 침범함에 싸우지 않으면 화친하는 것이요. 화친을 주장함은 나라를 팔아먹은 것이다."라는 척화는 무력적인 것이나 문화, 종교 등 모든 것에 포함이 되어 있다. 오가작통(五家作統)으로 사학 죄인을 색출, 무차별하게 천주교인들을 끌어다가 처형하던 당시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처형되었다. 

시간은 지나가지만 누군가를 사랑했던 것을 기억하는 것은 영원히 뒤에 남기도 한다. 충청·전라·경상도로 갈라지는 주요 길목인 죽산은 지리적 조건 때문에 조선 시대에 도호부가 설치되었다. 죽산은 안성시의 옛 중심지였던 곳이다.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의 죽산면사무소 자리에서 천주교인들이 참담한 고문 끝에 처형되었다.

몽골군이 있었던 곳이라는 이름의 이진터는 조선 말기에 와서 이곳으로 끌려가면 죽은 사람이니 잊으라고 하여 '잊은 터'로 불리게 된다. 누군가의 가족이었으며 사랑하던 사람이었던 사람은 그렇게 잊혀야 했다. 죽산성지의 겨울연가는 그렇게 그려지게 된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차분한 곳이다. 예수의 고난을 보여주는 석상이 언덕을 중심으로 자리하고 있다. 평온해 보이지만 상당히 입체적인 느낌이 들게끔 해두었다. 시대를 달리해서 보면 어떤 것이 진실이었고 어떤 것이 현실적인 것인지 알 수 없을 때가 있다. 우리는 때론 시대적 선택을 강요받기도 한다. 

흰 석상들과 뒤에 있는 나무들, 땅에 있는 갈색의 잔디가 단조롭게 보이지만 오히려 더 명확해 보인다. 죽산성지에는 ‘치명 일기’와 ‘증언록’에 이름이 기록된 분만 해도 24위이고, 하느님과 복을 위하여 목숨을 바친 순교성지라고 한다. 

겨울연가에 어울리는 음악은 시간 속에 그냥 흘러가는 것뿐이지 결정되는 것은 없다. 어떤 것을 선택해도 목적은 중요하지 않다. 자신의 내면 속에 평온을 찾으면 그것으로 그만이다.  


안성 죽산에 자리한 죽산성지를 한 바퀴 돌아보고 내려오면서 척화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본다. 항상 올바르게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그만큼의 노력이 필요한 법이다. 사람의 가치관을 단 칼로 결정하는 것은 쉽다. 올바르게 이해하는 것이 항상 어렵다. 

안성 죽산성지의 겨울연가는 이렇게 조용하게 연주되고 누군가가 기억해주었으면 하는 사람들의 모습도 생각해본다. 올해는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워하며 부르는 노래인 연가가 어울리는 겨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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