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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Dec 14. 2022

설경

한밭수목원에서 눈으로 그린 세상을 걷기 

자신이 이루고 싶은 바를 이루고 싶은 사람을 통칭하는 폴리매스는 손이 닿을 듯 말 듯 한 자리에 원하는 목표가 놓여 있다고 믿으면서 분투하는 사람이다. 그렇게 분투하다 보면 실패와 좌절은 쉬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면서 투지로 이어지게 된다. 끊임없이 같은 길을 가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자신의 진가를 보여주기 위한 세상에는 지름길도, 요령도, 공짜도 없다. 

우리는 어떤 세상을 꿈꾸며 살아갈까. 눈으로 보는 것과 마음으로 보는 것은 다르다. 어떤 단계에 이르기까지 많은 노력이 있는지 결과만 보는 사람은 알지 못한다. 식사를 하고 오래간만에 설경이 있는 한밭수목원을 걸었다. 필자가 찍은 사진을 보더니 믿을 수 없다는 그녀의 말에 눈으로만 보지 말고 마음으로 보라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전국에 많은 눈이 내려서 그림 같은 설경을 만들고 있다. 새하얀 옷으로 갈아입고 한 폭의 그림 같은 장관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곳곳의 나뭇가지에 하얀 눈꽃이 피어 신비로운 상고대 설경도 좋지만 멀리까지 가지 않더라도 이렇게 설경을 만나볼 수 있다. 

눈이 만들어낸 설경의 한밭수목원이라는 미술관을 읽는 시간이다.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보면 소모하는 것이다. 내 몸과 마음을 어떻게 그릴 것이냐가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잘 깎은 연필을 써서 그리다가 닮으면 다시 깎고 그리다가 다시 깍다보면 언젠가는 그 끝이 드러나게 된다. 자신이라는 연필이 어떻게 깎여서 어떤 그림을 그릴지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내린 눈이 설경을 만들었지만 위에 낙엽이 덮여서 보이지 않게도 한다. 자신이 세상을 떠나고 나면 자신의 그림은 어떻게 될까. 아름답게 기억이 될까. 아니면 이곳의 낙엽처럼 덮여서 보이지 않게 될까. 겨울이지만 한밭수목원은 그렇게 춥지가 않아서 산책하기에 좋은 날이었다. 

산뜻하게 가기 좋은 생활 속의 공원은 어디에 있을까. 수목원은 결국 꽃과 나무가 채워진 내용의 공간이다. 아무리 아름다운 수목원을 만들어두었어도 그 속에 담긴 내용이 빈약하여 찾아주는 사람들에게 아무런 감성을 주지 못할 때 수목원은 아무것도 아닐 수가 있다. 

이 시간이 그냥 좋지 않을까. 설경 속에 빛과 그림자가 공존해 빛과 비어 있음의 오묘한 울림이 이곳에 있다. 한밭수목원은 곳곳마다 공간 구성을 해두고 이름을 지어두었다. 개인적으로는 모네의 숲, 마네의 호수, 행복한 정서가 담긴 센 강의 물결 등으로 이름을 정해도 좋다는 생각을 한다. 1874년 여름, 마네는 모네가 머물고 있던 아르장 튀유에 놀러 가서 사랑스러운 풍경화를 그렸다. 그 그림이 아르장튀유의 센 강변이다. 

풍경에 스토리가 입혀지게 되면 그 풍경은 사랑스러워진다. 

미술은 우리를 둘러싼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게 하고, 삶에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 한밭수목원의 설경을 통해 우리 모두의 삶이 잠깐이라도 풍성해지기를 바라면서 이날의 발걸음을 이쯤에서 멈춰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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