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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Feb 03. 2023

나의 고창답사기

모양성(牟陽城)으로도 불렸던 고창읍성 (高敞邑城)

“언제부터 나를 세자로 생각하고, 또 자식으로 생각했소!” 어린 시절에는 그렇게 이쁜 아들이었으며 총명하다고 생각하여 너무 큰 기대를 했던 탓일까. 정조의 아버지인 사도세자는 점점 궁지로 몰리게 된다. 결국 극단으로 치닫게 된 영조와 사도는 그렇게 대립각을 세우게 된다. 아버지와 아들, 어머니와 딸은 연대감이 있으면서도 묘하게 대립하는 존재다. 애증의 관계라고 할까. 지금까지 알려진 세자의 시호인 사도는 그가 죽던 날 영조가 내린 것이다. "생각할 사, 슬퍼할 도, 사도세자(思悼世子)라 하라"

전라북도 고창군의 중심에 오면 고창읍성이 있다. 고창읍성은 바로 영화 사도를 촬영했던 곳이기도 하다. 이곳 객사에서 촬영을 했는데 그만큼 고창읍성은 고증을 거쳐 잘 만들어진 읍성이다.  

고창읍성의 전면공간은 넉넉하니 산책하기에 더없이 좋다. 둘레 1,684m. 지정면적 18만 9764㎡규모인 고창읍성은 동쪽으로 진산(鎭山)인 반등산(半登山)을 둘러싸고 있으며 1965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1453년(단종 1)에 축조하였다는 설도 있고 숙종 때 이항(李恒)이 주민의 힘을 빌려 8년 만에 완성시켰다는 설도 있지만 확실하지는 않다고 한다. 고창읍성으로 가는 길목에는 고창 판소리 박물관이 자리하고 있다. 

고창 판소리는 어떤 소리일지 아직은 들어보지는 못했지만 판소리 박물관의 옆에는 고창 신재효 고택이 있다. 이 집은 신재효의 대저택인 동리정사의 사랑채라고 한다. 마당으로 수로가 흘렀고 거대한 석가산이 있어 운치 있는 집이었으나 지금은 사랑채만이 남아 있다. 

신재효라는 사람은 판소리 문학의 이론가이며 연출 가였다고 한다. 판소리 사설을 창작하고 집대성하였다고 한다. 향리라는 신분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예술 활동을 후원하여 판소리를 국문학의 정수로 끌어올렸다고 한다. 

본래 동리정사는 무려 13,000평방미터의 대지에 안채와 14칸의 줄행랑채 등 많은 부속 건물이 있었다고 한다. 

고창읍성하면 생각나는 키워드는 철쭉과 아낙네다. 고창읍성의 전설로 전해지고 있는데 돌을 머리에 이고 성을 한 바퀴 돌면 다리병이 낫고, 두 바퀴 돌면 무병장수 하고, 세 바퀴 돌면 극락승천한다고 한다. 이를 믿는 사람들이 매년 이곳을 돌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머리에 이는 돌의 크기는 알려져 있지 않다. 

돌을 머리에 이고 도는 아낙네의 이야기에서 이곳 성을 축성할 때 왔던 사람들의 이야기 등 수많은 스토리가 스며들어 있는 고창읍성이다. 영화 사도는 가족관계에서 일어나는 갈등 속에서 자신의 소중한 가치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의 감정이 충돌하는 것을 잘 그려냈다. 

눈이 내린 고창읍성은 겨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지금이 고창을 방문하기에 딱 좋은 때다. 작년에 입춘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올해도 입춘이 이번주에 있다. 

아버지와 아들, 어머니와 딸의 관계는 시간이 지나다 보면 때론 어색하게 될 때가 있다. 때론 대화보다는 침묵을 통해 같은 곳을 바라보며 그 입장을 헤아려보는 것이 어떨까. 올해도 어김없이 고창읍성을 돌며 극락승천을 비는 아낙네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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