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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Feb 10. 2023

콘스탄틴 (Constantine)

사람은 결국 자신을 구원하기 위해 살아간다.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모든 사람은 존재의 이유가 있을까. 최근 튀르키에에 일어난 대지진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지금도 죽어가고 있다. 어떤 사람은 미국에서 태어나고 어떤 사람은 튀르키에에 태어난다. 그곳에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차별을 받아야 할 이유가 있을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태어나는 것에는 선택권이 없기 때문이다. 선택권은 없지만 많은 사람들은 쉽게 이야기를 한다. 즉 자신의 관점에서 더 이상 나아가지를 않고 머무는 것이다. 어떤 부모를 만났느냐에 따라 자신이 하고 싶은 것 자체를 할 수가 없다. 누군가는 그걸 넘어서는 노력을 해서 이겨낸 사람의 예를 들지만 그것은 말도 안 되는 주장이다.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의 노력 중에 정말 우연하게 나온 한 사람의 결과를 가지고 말할 수는 없다. 


과거에 개봉했던 영화 중에 속편이 나왔으면 하는 잘 만들어졌으며 재미있는 영화가 있다. 키아누 리브스와 레이철 와이즈의 캐미가 좋았던 2005년 개봉작 콘스탄틴이 그런 영화였다. 선과 악의 모호한 기준과 사람은 결국 자신을 구원하기 위해 이타적이 될 수도 있다는 관점은 시사하는 바가 있었다. 극단의 선은 결국 악이 되고 극단의 악은 선이 될 수도 있다. 우리는 극단이 아닌 조화와 공감이 필요한 것이다. 

신은 인간의 삶과 죽음에 큰 관심이 없을 수 있다. 시험합격이나 인간세상에서나 필요한 것을 위해 신에게 필지만 신에게는 그건 아무 의미가 없다. 그걸 어디다가 쓰겠는가. 결국 인간이 만든 시스템에서 나온 결과물에 불과한데 말이다. 존 콘스탄틴이 살아가고 있는 세상은 인간의 형상을 한 혼혈 천사와 혼혈 악마가 존재하고 있다. 태어날 때부터 그들을 구분하는 능력을 타고난 존 콘스탄틴은 자신의 능력을 저주하며 운명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살을 시도하지만 실패하고 결국 지옥에 가는 운명에서 벗어나기 위해 악을 지옥에 보내는 사람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균형을 맞추어가며 살아야 할 이유가 있다. 이념에 사로잡혀서 수많은 사람들을 죽여왔고 종교적인 관점에서도 서로를 핍박하고 죽이고 말살하려고 했다. 이슬람에서 보듯이 모하메드의 정신을 계승했던 그 피를 이어받은 사람이 든 간에 무엇이 중요하겠는가. 그렇지만 수니파와 시아파로 갈려서 지금도 국제분쟁에 휘말리고 있다. 

L.A 강력계 소속의 여형사 안젤라는 쌍둥이 동생의 죽음에 대한 의문을 풀기 위해 도움을 요청하게 되면서 존 콘스탄틴과 선과 악의 여정에 동참하게 된다.  흔히 말해서 안젤라와 그녀의 동생은 영매다. 악이 세상으로 나오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인간문인셈이다. 

인간세상에서 선과 악에 대한 기준을 내리는 대표적인 것은 법이다. 법은 과연 공정하고 공평한가. 공정하고 공평했다면 세상에 많은 문제가 잘 해결될 것이고 갈등도 지금처럼 심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콘스탄틴을 보면서 선과 악, 삶과 죽음, 천국과 지옥은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뒤돌면 바로 보이는 것과 같다. 우리는 이 공간에 살고 있으면서도 천국과 지옥을 동시에 경험할 수 있다. 그것은 보는 관점의 차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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