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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Feb 13. 2023

여행의 밀도

김천의 모성암과 방초정의 겨울 풍경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라는 말은 밀도가 높아짐으로 인해 생기는 마찰 혹은 보지 못했던 것까지 보이는 것에 대한 것을 단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아닐까. 오목거울이나 볼록거울 앞에 서면 의도하지 않게 작아지고 의도하지 않게 몸이 뚱뚱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의 눈은 때론 그렇게 왜곡되어 세상을 바라보기도 한다. 자신이 보고 들은 대로 믿기도 하지만 때론 그것조차 다시 생각해봐야 할 때가 있다. 

김천의 겨울풍경을 보면서 국도변을 가다가 암반 위에 있는 정자를 볼 수 있었다. 김천시 구성면 상좌원 마을 상단에 위치하고 있는 바위로 옛 이름은 굴암이었는데 1697년에 모성암이라고 개칭하였다고 한다. 초장 이당원의 장구지수로서 바위와 산수가 아름다워 구곡단가와 여석홍이 공자동구곡 제1곡에서도 나온다. 

이쯤에서 모성암이라는 시를 한 번 읊어볼까. 


모성암 

주렴 친 초가집에 늙은 바위 나를 맞아

여와씨가 다듬은 골격 지금까지 남아있네

앞길 구비마다 기이한 경치 펼쳐있어

행단의 현가가 밖으로 나오게 하네

우리는 생각보다 많은 분야에서 밀도에 영향을 받고 살아가는 것을 잊고 살아간다. 사람의 몸에도 밀도가 있는데 운동을 하지 않을수록 밀도는 줄어들게 된다. 보스턴대의 연구에서  복부에서 발견되는 내장지방조직(VAT) 변화를 관찰했는데 VAT가 6년간 가장 많이 쌓인 사람의 근육 밀도는 다른 사람보다 현저히 낮은 수치를 보였다고 한다. 

우리는 평생을 살아가면서 다른 사람들과 혹은 자신의 직업이나 관계에서 거리를 조절하면서 살아가는데 가장 많은 신경을 쓰고 있을지 모른다. 영남의 선비 이민관은 그의 호를 성암이라 하였고 후에 연안이 씨 후손들이 모성암 바위 위에 모성정을 지어놓고 공자를 숭앙하고 있다고 한다. 저 정자가 바로 모성정이다.  

아래에는 옛 선비들이 새겨놓은 글들이 있다. 성현 공자에게 춘추시대 제나라 후작인 경공(景公)이 '정치하는 방법'에 대해서 물었을 때 공자께서는 "임금은 임금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부모는 부모답게, 자식은 자식답게(君君臣臣父父子子)"라고 했다고 한다. 

모성암에서 탁 트인 정면을 바라본다. 저 산과의 사이가 꽤나 있어 보인다. 아무리 멀리 있어도 가고자 마음먹는다면 언젠가는 도달하게 된다. 

물 위에 비친 반영이 인상적인 이곳은 모성암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보물 제2047호로 지정된 조선 선조대의 누각인 방초정(芳草亭)이다. 주변의 경치가 뛰어나 예로부터 경치를 감상하기 위하여 많은 문인묵객이 찾아들었다고 하는데 그 앞에는 이렇게 커다란 방지(方池)가 꾸며져 있으며, 물 가운데에 섬이 둘 있다.

누각이 2층으로 만들어져 있으면서 독특하다. 이 정자는 상원리 원터 앞 동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2층누각의 형식으로 꾸며놓았는데 영남지방의 정자로 보기 드물게 마루 한가운데 한 칸 크기의 온돌방이 꾸며져 있다. 구미의 채미정과 비슷한 구조지만 채미정은 1층에 자리하고 있다.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6호인 방초정은 선조 때 부호군(副護軍)을 지낸 이정복(李廷馥)이 창건하였으며, 1723년(경종 3) 여름 홍수에 유실된 것을 4년 뒤인 1727년(영조 3)에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한자인 방초는 만물과 봄을 같이 누린다는 마음을 담고 있다고 한다. 꽃다운 풀로 마을의 들어가는 입구에 자리한 곳으로 영남에 자리한 누정처럼 은거라던가 강학, 수양의 공간으로 지어진 곳이기도 하다. 날이 겨울이어서 푸르른 모습은 보지 못했지만 이제 곧 푸르른 모습의 연못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앞에 연못은 유교적 우주관을 담은 것처럼 보인다. 두 개의 섬은 해와 달을 가리킨다고 한다. 지금도 대청호와 같은 곳에는 수질을 정화하기 위해 물을 담아놓는 것처럼 비점오염원등을 정화하는 것이 바로 이 연못이었다고 한다. 

잠깐동안이었지만 영남의 한 지역이었던 김천의 누정을 만나보았다.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두 곳이지만 한 곳씩 보는 것도 좋고 두 곳 모두 돌아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 날이 그렇게 좋지는 않았지만 충분히 여행의 밀도를 느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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