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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Feb 24. 2023

쓸쓸하지만 다정한

갈항사는 역사(歷史)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렸다. 

건물을 사라져 버리고 흔적마저 찾기가 어려운 절터를 얼마나 많이 가보았는가. 지금 사찰의 입지는 대부분 산속에 자리하고 있지만 고려시대만 하더라도 현재의 교회처럼 사람이 거주하는 공간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었다. 조선시대에 들어서면서 정책적으로 불교를 억제하면서 산속에 터를 잡기 시작했다. 어찌 보면 산속에 터를 잡은 덕분에 지금까지 그 명맥을 잘 유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경상북도를 가는 길에 항상 보았던 이정표였지만 가보지 못했던 김천 갈항사지 석조여래좌상을 보러 가보기로 했다. 김천과 인접한 구미를 대표하는 금오산이 병풍처럼 둘러쳐진 산자락에 폐사지가 남아 있다. 이름하여 갈항사지라고 불리는 곳이기도 하다.

갈항마을이라고 불리는 이곳에도 적지만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다. 여름에는 이곳에서 수박이라도 같이 먹으면서 담소를 나눌 것이다. 지금은 쓸쓸한 모습이지만 조금만 있으면 따뜻해지지 않을까. 

갈항사는 신라 승려 승전이 692년(효소왕 1년) 창건했다는 설이 있는데 갈항사 삼층석탑에 새겨진 명문에 의하면, 영묘사 언 적 법사와 조문 황태후, 경신태왕 등이 중창에 관여했다. 경신이 원성왕의 이름이므로 석탑은 원성왕 재위기간인 785년부터 799년 사이에 조성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이곳에는 갈항사의 삼층석탑이 있었지만 지금은 국보 제99호로 지정되어 서울 국립중앙박물관 앞뜰에 놓여 있다. 두 탑은 천보 17(758)년 오라비와 언니, 여동생 3인의 업으로 완성했다. 오라비는 경주 영묘사 언적법사이고, 언니는 소문황태후이며, 여동생은 경신태왕 이모이다(二塔天寶十七年戊戌中立在之 娚姉妹三人業以成在之 娚者零妙寺言寂法師在 姉者照文皇太后君妳在 妹者敬信太王妳在也)" 라는 명문이 있어 조성 시기와 누가 탑을 세웠는지를 알 수 있다고 한다. 

보다시피 사찰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어디서도 흔적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그냥 과수원으로 조성이 되어 있고 위로 올라가는 길목에는 암자 같은 갈항사라는 사찰만이 자리하고 있다. 

갈항사라는 사찰은 나중에 올라가 보기로 하고 우선 주변에 있는 불상을 만나본다. 삼국유사(三國遺事) 의해편 ‘승전촉루(勝詮髑髏)’조에 의하면 갈항사(葛項寺)는 신라의 승려 승전(勝詮)에 의해 창건되었다. 

철로 된 감옥 같은 곳에 불상이 들어가 있다. 보호하려고 그렇게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불상의 상태는 좋지가 않다. 비로자나불의 불두가 사라졌으며 불상의 파괴도 심각하다. 홀로 이곳에서 얼마나 지키고 있었을까. 

조각조각 붙여져 있어서 불상의 모습이 애처롭게 보이지만 묘한 느낌이 든다. 임진왜란 이후에 조선 후기에는 갈항사에 대한 기록이 보이지 않으므로 폐사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도 전각 안에 보존이 되고 있는 석가여래 좌상의 상태는 온전한 편이다. 전각의 문은 잠겨 있지 않아서 들어가서 볼 수가 있다. 

소박하면서도 온화하고 둥근 얼굴에 미소를 띠고, 눈, 코, 입의 표현이 명확해 보인다. 대좌는 불신과 앙련(위로 향하고 있는 연꽃잎)이 새겨진 상대석만 있고, 광배와 하대석은 파괴돼 사라져 버렸다. 

승전법사는 의상대사의 제자 중 한 사람으로 일찍이 중국에 건너가 법장대사의 문하에서 화엄을 배웠다고 한다. 김천의 유명한 사찰은 바로 직지사다. 직지사에 비하면 갈항사는 너무 쓸쓸하게 느껴진다. 

역사를 가늠할 만한 유물들이 남아있어 전체적으로 옛 영화로웠던 시절을 일부나마 확인할 수 있지만, 이곳 갈항사지는 그 흔적이 쓸쓸함만을 보여주고 있다. 위로 올라와서 보니 암자처럼 자리한 갈항사라는 작은 사찰이 자리하고 있다. 

때로는 우리는 삶이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는지 알지 못할 때가 있다. 갈항사라는 사찰의 시간도 그렇게 지나가버렸다. 하고 싶은 일이 있고 해야만 할 일이 있다. 삶의 목적이 없거나 방향을 상실하게 되면 동력원이 없어져서 피로해지게 된다. 행복이라는 것은 찍어내듯이 만드는 기성품이 될 수가 없다. 그렇게 습관을 들이다 보면 자신만의 행복습관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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