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살까.

전주 류 씨의 집성촌 구미 일선리 문화재마을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집안은 상대적으로 시간적으로도 여유가 있다. 한반도에 자리한 오래된 가옥 중에 많이 남아 있는 형태는 기와집이다. 기와집이나 초가집 모두 유지보수를 하는데 비용이 수반되고 손도 많이 가지만 기와집은 초가집에 비해 상대적으로 오랫동안 유지될 수가 있었다. 무거운 돌을 기단으로 쓰고 큰 주춧돌을 사용한 기와집은 무거운 기와도 지탱할 수 있어야 했다. 건축비가 비싼 기와집에 살 수 없었던 사람들은 초가집에 살았는데 1년 연중 바쁘게 수선을 해야 집이 유지가 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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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에는 하나의 성씨가 집성촌을 이루면서 살고 있는 공간들이 남아 있다. 대표적인 안동 하회마을부터 영주, 상주, 영천, 경주 등에는 대표적인 집성촌이 있는데 구미시에도 일선리 문화재마을이라는 곳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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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선리 문화재마을은 전주 류 씨의 집성촌으로 본래 전주 류 씨는 안동시 임동면 수곡리에 정착하여 400여 년간 살고 있었는데 1987년에 임하댐을 건설하면서 마을들이 물에 잠기자 수곡리에 살고 있던 전주 류 씨 집안 70여 호가 구미시 해평면 일선리에 집단 이주하여 새로 마을을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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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안에는 용와종택 및 침간정(경상북도 민속문화재), 동암정(경상북도 문화재자료), 대야정(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수남위종택(경상북도 문화재자료), 만령초당(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삼가정(경상북도 문화재자료), 호고와종택(경상북도 문화재자료), 근암고택(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임하댁(경상북도 문화재자료), 망천동 임당댁(경상북도 민속문화재) 등 경상북도 지정 문화재 10점이 모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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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에 대다수의 사람들이 살고 있는 요즘은 사람들과의 관계는 SNS나 특정 목적을 위한 사람들의 모임으로 이루어지지만 벼농사가 가장 중요했던 때는 마을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중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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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을 돌아보면 집들의 구조와 형태가 비슷한 것을 볼 수 있다. 건축을 통해서 사람과 건축, 주변 자연환경과의 관계에 무게를 둔 것을 볼 수 있다. 옛날의 벼농사는 사람의 손이 절대적으로 필요했기 때문에 마을 공동체가 잘 살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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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과 황토색의 돌담으로 둘러싸여 있는 골목길은 편안한 느낌을 준다. 한국의 집성촌을 보면 마치 바둑돌처럼 둘러싸고 둘러싸인 독특한 동양문화를 볼 수 있다. 얼마 전 지인과 백화점을 갔다가 아주 이쁘게 생긴 캐릭터 체스를 보았는데 체스는 홀로 독립적인 느낌이 들게 한다. 그건 서양건축과 동양건축의 차이때문일 것이다. 홀로 서 있어도 독특한 가치를 가진 서양건축과 모여있음으로 그 지역의 문화를 담음 한옥은 느낌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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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선리 문화재마을의 문들은 열려 있는 곳들이 적지가 않다. 많은 사람들이 방문해서 집을 드나드는 것은 불편한 일일 수 있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돌아보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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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는 기존 문화재 안내판의 어려운 안내문안을 누구나 알기 쉬운 용어로 교정하였으며 오래되고 햇빛에 반사되는 재질에서 가독성이 좋으며 주변 경관과 잘 어울려지는 재질로 교체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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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식 건축에서 조경을 할지는 몰라도 이렇게 밭을 만들어놓고 무언가를 재배하는 경우는 많지 않았던 것 같다. 한옥의 특징이라고 하면 공간과 관계에서 비롯된 사람이 사는 곳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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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실마을 전주 류 씨 가문이 새로운 고향을 만났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수류우향(水柳寓鄕)’이 마을입구에 서 있는 일선리 문화재마을은 사람은 어디서 살 것인가에 대한 생각을 해주는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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