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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Apr 11. 2023

인생의 판화

진천 생거판화미술관의 소장작품전 '사람이 사는 판화'

인간답게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적어도 자신이 구속받지 않은 상태에서 자유롭게 무언가를 선택하고 그것에 대해 책임도 지는 삶이 아닐까. 그렇지만 한국사회가 그런 사회인가를 묻는다면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최저임금보다 낮은 임금을 받고도 일할 사람의 자유도 보장해야 된다는 누군가의 말이 있었는데 그게 과연 자유라고 말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물론 자유롭게 더 적게 받고 기꺼이 일하겠다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해야만 하는 사람에게 그건 자유가 아니다.  

사람이 사는 모습을 보기 위해 진천 종박물관이 자리한 곳에 생거판화미술관을 찾아가 보았다. 이곳에서는 사람이 사는 판화전이 열리고 있는데 '사람'을 주제로 작가 26명의 40여 작품이 전시되고 있어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가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역사 기록, 심상 반영, 신화(神話) 등의 작품 분류를 통해 자아탐색은 물론 타인과의 관계, 소통, 사유의 시간을 제공하고 있어서 다양한 관점에 대한 생각을 해볼 수가 있다. 

판화를 언급할 때 보통 돌, 나무, 금속 등의 판에 형상을 낸 뒤 잉크등을 바른 후 종이에 찍어내는 형식의 그림이지만 넓게 본다면 우리가 보고 있는 대부분의 것들이 판화이기도 하다. 사진 역시 디지털을 활용하여 만든 판화의 형식이다. 

판화라고 말하면 찍어낸다는 표현이 적당할 듯하다. 사람의 인생 역시 사회가 찍어낸 모습을 기반으로 살아가게 된다. 이곳의 사람이 사는 판화라는 의미는 판화 속에 사람의 모습이 담겨 있음을 의미한다고 볼 수가 있다. 

현대인들의 초상부터 김홍도의 풍속화, 슈퍼맨, 배트맨, 원더우먼등의 메타휴먼의 모습도 이곳에서 볼 수 있으며 전쟁, 핵, 산업폐기물 등의 현대사회의 폐허를 표상하는 소재들을 배치해 두었다. 삶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생각하고 그려보기도 한다. 그들은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떤 사람을 만났으며 어떤 사랑을 했을까. 

사람의 기억은 순간이 지나가면 희석되고 왜곡되기 시작한다. 모든 현상은 변하고 소멸하는 것이어서 이처럼 판화로 남겨두지 않는다면 그 기억은 사라지게 될 것이다. 누군가와의 만남이나 타인과의 관계를 조명하고 타인과 나의 거리는 어떠한지, 나의 존재 가치는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한다. 생각의 밀도를 통해 우리는 어떤 가치를 찾아야 하는 것일까. 

이곳에 걸린 작품들은 불교적 색채, 기독교적 색채, 목가적인 풍경등 다양한 이야기들을 통해 우리가 수시로 겪는 심리적인 공허함을 보여주고 있다.  

진천군립 생거판화미술관은 2010년 9월 전국 유일의 현대판화를 전문으로 하는 공립미술관으로 개관해 다양하고 실험적인 판화 전시는 물론 주민 대상 판화체험 교육 프로그램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는 곳이다. 올해는 이번 소장작품전을 시작으로 기획전 1회(5월~7월), 특별기획전 1회(8월~10월) 등 총 3개의 전시를 선보일 예정이라고 한다. 

다른 사람들의 삶을 살펴보는 기회는 많지가 않다. 자신이 살아가기에도 바쁜 시대에 남에게 신경을 쓰는 것이 쉽지가 않기 때문이다. 삶의 재미를 찾는 것은 에너지로 전환될 무언가를 찾는 것이기도 하다. 사람이 사는 판화를 통해 삶의 색채를 입혀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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