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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Dec 17. 2016

베트남전의 희생

합리적인 전쟁이란 없다. 

전쟁은 누가 일으키는 것일까. 사람들은 전쟁이 일어나지 않아야 된다고 말하지만 인간이 존재하는 이상 전쟁은 일어난다. 인간은 이성적인 존재이기도 하지만 너무나 비이성적인 부분도 적지 않기 때문에 전쟁이 일어난다. 베트남전은 미국과 베트남, 한국에 엄청난 파괴와 인명 손실을 입인 후 1973년에 휴전협정으로 끝이 났다. 


한국 정부에서는 공식적으로 베트남전이라 칭하지 않고 월남전이라고 불렀다. 1964년 처음 파병한 이래 1973년 3월 철수할 때까지 무려 32만 명의 한국군이 베트남전에 참전했다. 한국이 베트남전에 참전한 것은 당시 박정희 정부에서 신의 한 수나 다름이 없었다. 기반산업이 없는 가운데 달러를 벌어올 수 있는 방법이 없는 상태에서 베트남전과 대일 청구권 자금은 단비였다. 참고로 대일 청구권 무상자금은 필리핀이 5억 5천만 달러, 한국 3억 달러, 인도네시아 2억 2천만 달러, 베트남 4천만 달러였다. 


미국이 발행하는 화폐 달러 확보는 한국경제를 살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도 했다. 베트남전으로 인해 벌어들인 돈(최소 10억 달러 이상)은 일본에서 받은 돈과 함께 대기업을 일으키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박정희 대통령의 임자 한번 추진해봐라는 말은 그런 달러를 시드머니로 대기업과 대한민국 경제를 키워나간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어떤 이가 착복하고 누군가에게 특혜가 돌아간 것은 차치하더라도 베트남은 엄청난 피해와 죽음을 목도해야 했다. 

베트남 호찌민시에 가면 베트남 전쟁 역사박물관이 있는데 그곳에는 전 세계에서 온 수많은 외국인들이 방문한다. 베트남전에서 겪게 된 수많은 피해와 군사무기 등을 직접 접해볼 수 있는 그곳에 가면 전쟁이 누군가에게는 엄청난 이득을 가져다주고 권력을 공고하게 지키는데 도움이 되겠지만 그 참상은 눈뜨고 보기 힘들 정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남베트남 지도자의 무능과 바닥을 알 수 없는 부패 때문에 패망했지만 한국은 월맹에 의해 베트남이 공산화한 것을 보고 국민들은 다른 생각을 한다. 남베트남의 패망은 박정희 대통령의 유신 헌법 통과와 긴급조치 9호 발령을 아주 순조롭게 진행되게 만들어주었다. 

베트남전이 타당한 전쟁이었을까?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인간의 법은 시민의 자유를 보호하기는커녕 억압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정당이 편파적이며 집권층들의 정책은 종종 국민들의 도덕 신념과 어긋난다. 겉으로는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한다고 베트남전에 참전한 미국은 명분과 실리를 모두 잃어버렸다. 이곳에 찾아온 외국인들은 그런 부분을 심각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International crime을 막는다고 전 세계의 경찰국가를 자신하던 미국은 정당하지 않은 전쟁에 발을 담근 적이 있다. 

전쟁에서 사용되는 무기들은 지금 그 수준이 어디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진화해왔다. 살상능력을 배가시키는 동시에 회복하지 못할 부상을 만드는 무기를 개발하여 상대방에게 피해를 입히도록 고안해 왔다. 최근 전쟁 양상을 보면 군인보다 민간인의 피해가 훨씬 커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앞으로 만약 전쟁이 난다면 직접 참전하는 군인들의 피해보다 민간인의 피해가 훨씬 클 것이다. 

미국이 250만 명이나 보낸 베트남전에서 눈에 뜨이는 것이 또 하나 있다. 의무병제를 채택하고 있는 한국조차도 있는 사람들의 자녀는 군대를 비공식적으로 면제(?) 받을 수 있는 듯하다. 당시 미군은 징병제를 채택했는데 미국 전체 인구의 10%에 불과한 흑인의 베트남전 사망자의 비율은 20%를 웃돌았다. 못 배우고 소득이 낮은 계층의 자녀들이 군대를 자원입대하여 베트남전에 참전한 사람들이 많았던 것이다. 게다가 베트남전에서 조차 최전선에는 이들이 배치되고 정치인을 꿈꾸던가 명예로운 것을 추구하는 미국인들은 장교나 후방 지원으로 사령부에 배치되는 경우가 많았다. 

베트남전의 또 다른 피해를 오래도록 남긴 것은 고엽제의 사용이었다. 에이전트 오렌지, 에이전트 블루, 에이전트 화이트라고 불렀던 제초제 중 에이전트 오렌지를 고엽제라고 칭한다. 강력한 제초제가 가지고 있는 장점(?) 답게 살포된 지 2~3일 만에 숲 전체를 붉게 물들이면서 시작해 3~4주 만에 대부분의 나무를 고사시킨다. 

10여 년간 베트남에 뿌려지던 고엽제에서 초미량의 불순물이 디옥신이 검출되었고 디옥신은 기형과 암 발생의 원인이 될 수 있는 결과가 나왔다. 전 세계의 여론이 악화되자 울며 겨자먹기로 미국은 1970년대 초반에 고엽제 사용을 중지했다. 고엽제는 베트남인뿐만이 아니라 참전한 군인들에게도 상당한 후유증을 남겼다. 

베트남전에만 뿌린 고엽제의 양은 무려 8,000만 리터에 가까웠다. 베트남 외부부는 2008년까지 480만 명의 베트남인이 고엽제에 노출되어 40만 명의 사망자와 장애인 그리고 50만 명의 아이들이 기형으로 태어났다고 밝혔다. 


베트남전에서 남베트남 정부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미군의 전폭적인 지원에도 불구하고 전세가 나아지지 않을 때 터진 미라이 사건은 미국이 내세운 명분과 도덕성을 상실하게 만들었다. 사건을 계기로 월맹은 더욱더 단결했고 미국은 결국 손을 떼게 된다. 

현재 미라이 지역에는 1968년 학살 사건을 추모하는 기념관이 세워져 있다. 공식 자료에 의하면 사건 당시 학살된 민간인은 두 504명으로 사망자에는 유아 56명과 여성 182명이 포함되어 있다. 

전쟁은 이념에 의해서든 국제적인 이해관계에 의해 촉발되어 어쩔 수 없이 발생했다 하더라도 그 속에서 민간인 피해는 최소화해야 했지만 학살도 적지 않게 자행되었던 것이 속속들이 드러났다. 특히 그중에서 프리랜서 기자였던 세이모어 허시가 알린 미라이 (My Lai) 학살은 베트남전의 치부를 세상에 터트린 결과 엄청난 파급효과를 초래했다. 

한국의 언론에서 일하는 종사자들 중에 제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미국이라는 나라가 자본주의 문제점을 그대로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패하지 않고 패권국가를 유지하는 것은 감춰진 불편한 진실을 밝혀내는 언론인들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언론인들은 지금 어디에 와 있는가. 

전투에서는 이겼지만 전쟁에서는 패배한 베트남전은 아편전쟁, 소련 -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전쟁과 더불어 목적이나 명분도 잃은 전쟁으로 꼽힌다. 남베트남이 부패하게 된 데에는 한국전쟁 이후 초기 정부 현실과 매우 닮아 있다. 남베트남에도 미국의 원조가 있었는데 눈먼 돈으로 인해 정권은 스스로 부패했다. 미국 원조를 자신들의 사치품 구입에 마구 쓰기 시작했는데 이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지엠 정권은 경찰을 이용하여 마구 투옥시켰다. 

남베트남 국민들은 정부와 정권을 비판하며 반정부 시위를 벌였지만 정치적으로 반목하는 상황을 이용하여 테러와 암살을 자행했다. 우익 인사라도 방해되면 누구라도 테러 대상이 되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청년조직을 만들어서 돈을 지원하고 자신들의 목적에 이용하였다. 남베트남 국민들의 삶은 나락에 떨어졌고 그런 상황이 도미노처럼 결국 베트남 전쟁을 촉발하는 원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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