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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May 23. 2023

인현왕후

그녀의 꿈을 이룬 김천의 천년고찰 청암사

당시 법적 성인인 정미생(1667년, 당시 15세)부터 계묘생(1663년, 당시 19세)까지로 제한하고 후사가 없었던 명분으로 과정을 대폭 축소하여 금혼령을 내렸다. 초간택, 재간택, 삼간택을 거쳐 내정된 대로 왕비로 최종 간선되었던 사람은 종친과 문무백관의 축하, 하례의식을 올려 숙종의 왕비가 된 사람인 인현왕후였다. 인현왕후를 이야기할 때 자연스럽게 따라다니는 사람이 장희빈이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장희빈의 대척점에 있었던 사람이었으며 김천의 자신의 흔적이 남겼다. 

신록이 무르익어가는 때에 찾아간 곳은 김천의 청암사라는 사찰이다. 청암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인 직지사(直指寺)의 말사로 현존하는 당우로는 1985년 경상북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된 대웅전을 비롯하여 육화료(六和寮)·진영각(眞影閣)·정법루·중 현당·범종각·일주문·사천왕문·비각(碑閣)·객사 등이 남아 있다. 

청암사는 산책하면서 생각하기에 좋은 사찰이다. 인현왕후의 꿈을 이룬 천년고찰 청암사에는 인현왕후의 음식과 건강, 교육, 복위식을 접해볼 수 있다. 858년(헌안왕 2) 도선(道詵)이 창건하였고, 혜철(惠哲)이 머물기도 하였으니 천년고찰이다. 

곳곳에는 샘물이 있다. 사찰이 자리를 잡을 때 물은 상당히 중요한 자원으로 사찰 중에 약수가 없는 곳은 거의 없는 듯하다. 많은 승려들이 이곳에서 머물기 위해서는 자연스럽게 많은 물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역사를 알면 사람의 삶이 보인다. 인현왕후의 숨길을 느낄 수 있는 김천 청암사 인현왕후의 길에는 옛날 선현들이 남기고 간 어록이나 명문 등이 바위에 빼곡히 새겨져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멋들어진 바위 사이로 걸어서 들어가면 사찰이 나온다.  

자연의 신록이 좋은 이곳에 인현왕후가 오게 된 것은 폐비가 되어서였다. 당시 숙종의 증조할머니인 장렬왕후의 국상 기간이라 "중전(인현왕후)의 탄일문안을 생략하라"라고 어명을 내렸는데도, 인현왕후가 문안을 받은 사건은 그녀를 폐출시키는 꼬투리가 되었다. 인현왕후에게 물어졌던 죄는 자식이 없는 죄, 투기로 내전의 일을 조정으로 확대시킨 죄등이었다. 

청암사로 들어가는 길은 호젓하기만 하다. 호젓한 산길을 걸었던 시간이 아픔을 견뎌내고 있던 그녀에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을지 생생하게 느낄 수가 있다. 김천의 청암사는 다른 사찰의 가람배치와는 조금은 다른 느낌이다. 대웅전 앞에 있는 높이 약 6m의 석탑은 1985년 경상북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으며, 1층 석탑에 여래상이 양각되어 있으나 탑신이 4층이어서 균형이 묘하다. 

극락교를 건너서 안쪽으로 들어가 본다. 오래된 건물이 입구에서부터 이곳에 담긴 역사와 문화의 힘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 문화유산에 숨겨진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고 습득해서 정확하면서도 흥미롭고 재미있게 그 가치를 전달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 

자연 속에 묻혀 살던 인현왕후는 장희빈이 강등되면서 인현왕후가 복위될 때의 삼불거 규범의 명분을 삼았다고 한다. 인현왕후는 숙종의 모친인 명성왕후와 증조모인 장렬왕후의 상을 같이 치른 조강지처이므로 폐위의 처분은 가혹하다는 것이었다고 한다. 

유난히 날이 좋은 때여서 그런지 청암사라는 사찰 속의 건물과 하늘, 녹색의 배경이 잘 어울려 보인다.  

청암사의 석탑은 조금은 왜소한 느낌이다. 

인현왕후는 사가 시절에 자기 자신을 죄인으로 자책하면서 식사를 거르는 등 건강을 챙기지 않았다고 하는데 중죄인 취급이라 사사로이 재물을 축적하거나 좋은 음식을 먹을 수가 없었고, 밖을 나다니는 일조차 항상 조심해야 했기 때문에 더욱더 소박한 생활을 했을 것이다. 

계단을 올라가면 청암사의 다른 건물들도 나온다. 여동생인 인현왕후가 폐위되고 나서 민진원은 집안이 몰락한 것에 한이 맺혀 소론과 절대적인 대척점에 이르게 된다. 이후 영조가 민진원과 소론의 수장을 탕평채등을 활용하여 화해를 중재하기도 했으나 결국 이루어지지 않았다. 인현왕후의 처가인 여흥민 씨는 후에 명성황후인 민 씨 등을 배출하며 조선의 마지막의 세도를 누리게 된다. 

공간에는 사람이 있고 역사가 있기에 스토리가 된다. 영화나 드라마등에서 극적으로 표현되기도 하지만 어디까지나 단편적으로 접할 수밖에 없다. 수도산의 쪽 기슭 골짜기는 불령동천(佛靈洞天)이라 불리는데, 계곡을 따라 우거진 숲과 옥류가 어우러진 경치가 아름답고, 불령산 청암사(佛靈山 靑岩寺)가 고즈넉한 초여름 풍경 속에 들어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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