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 초정행궁에서 맛본 '왕의 여름수라상'
하루 세끼 먹는 것이 좀처럼 생각보다 쉽지 않은 요즘에도 하루에 두 끼는 잘 먹어보려고 노력을 하는 편이다. 원래 한국의 식사는 점심은 거의 먹지 않고 간식처럼 간단하게 해결하던가 아예 먹지를 않았다. 일제강점기를 거쳐 지금처럼 점심이 당당하게 한 끼의 식사로 대접을 받고 있다. 그렇다면 임금은 세끼를 다 먹었을까. 그렇지 않다. 임금의 수라상은 아침, 저녁 두 번이었으며 12첩 반상으로 올려졌다. 누구나 임금처럼 먹지는 못했지만 지금은 정성이나 그 정성을 대신할 약간의 돈(?)이 있다면 얼마든지 그렇게 먹어볼 수 있다.
세종이 청주로 피부질환등을 치료하기 위해 행차하던 공간을 재현해 둔 곳이 바로 청주의 초정행궁이라는 곳이다. 행궁이라는 것은 궁은 아니지만 궁의 기준에 맞추어 만들어놓은 별장과 같은 곳이었다. 2023년 전통음식 감상회를 만나기 위해 이곳을 찾아왔다.
이름하여 왕의 여름 수라상이다. 여름이 되면 간단하게 먹을 것 같지만 더욱더 잘 챙겨 먹을 필요가 있다. 원래 왕에게 올려지는 수라상水剌床은 12첩 반상차림으로 원반과 곁반, 책상반의 3상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고려 시대에 몽골어로 '슐라'가 음식을 의미하는 말이었다고 한다. 그 슐라가 변형되어 오늘날의 수라로 된 것으로 보고 있다.
간이 세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맛있게 요리를 하려면 우선 재료가 정말 좋아야 한다. 재료가 좋았다면 정성이 들어가야 한다. 음식은 설명을 들으며 먹으면 맛이 더 좋다. 이곳에서는 하루에 두 번 10명까지만 받아서 수라상을 내놓고 있는 곳이다. 우선 오이소를 넣어 빚은 만두인 규아상을 먹는다. 쫀득하면서도 싱그러운 맛이 배어 나온다.
문어겨자초무침에는 바다에서 막 건져 올린듯한 싱싱한 문어와 각종 채소를 넣어서 만드는데 과일도 일부 들어간다. 건강하면서도 맛이 좋은데 아삭아삭한 맛이 좋다.
전복섞박지는 처음 먹어보는 듯하다. 전복이 들어간 반찬은 먹어본 적이 있지만 섞박지를 넣어서 같이 만든 음식은 오래간만이다. 전복 한 마리를 그대로 넣어서 만들었는데 적당하게 삭힌 맛이 좋다.
왕에게 올려진 12첩은 더운구이 (육류, 어류)와 찬구이 (김, 더덕, 채소), 전유어, 편육, 숙채, 젓갈, 장과 (장아찌), 생채, 조리개 (조림), 마른 찬 (자반, 튀각), 별찬, 생회 또는 숙회로 구성되었다고 한다.
가장 중심이 되는 요리 중에 하나가 구운 음식인데 이날은 민어가 올라왔다. 살은 무르고 부드러우면서 수분이 많은 민어는 회, 구이, 전, 매운탕등으로 먹을 수 있는데 수라상에 자주 올라갔던 단골 생선이기도 했다. 맛도 좋지만 전통방식으로 제조된 가구에서도 민어의 어교를 쓴 것을 최상품으로 치기 때문에 민어 부레로 만든 어교는 여전히 비싸서 자그마한 상 하나에 100여만을 웃돌기도 한다.
전통방식으로 증류를 해서 만든 소주도 나왔지만 차를 가져간 덕분에 술을 마시지 못하고 냄새를 맡아보았는데 안동소주와 매우 비슷한 느낌이었다. 맑은 소주에 민어안주면 왕이 업무를 보기 싫어할 정도의 궁합이지 않았을까.
여러 채소가 보기 좋게 세팅되어 나온 상추쌈을 먹어볼 시간이다. 고려시대에는 귀했던 상추지만 후대에 와서 백성들이 쉽게 먹을 수 있는 채소가 상추였다. 정약용은 상추를 건강해질 수 있는 가장 저렴한 채소라고 말하기도 했었다.
열무김치를 비롯하여 장똑똑이, 약고추장, 약고추장 쌈장, 새우볶음이 나온다. 생소한 이름의 장똑똑이는 소고기를 똑똑 썬다는 것에 유래한 이름이기도 하다. 가지런하게 차려진 밥상에 먹기만 하면 된다. 예약된 사람의 수많큼이나 사람들이 뒤에서 음식을 맛있게 먹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있다.
절미된장조치가 나오는데 자작하게 끓여 나오는 것이 특징으로 절미는 토장, 된장은 말 그대로 된장, 조치는 찌개를 의미한다고 한다.
먹기 좋게 쌈을 한 번 싸보았다. 과하지 않게 기분 좋게 식사를 하는 것은 몸에 약이 된다고 한다. 사람의 몸에 문제가 생겨 먹는 약은 인공적으로 사람의 몸에 무언가를 주입해서 고치는 것이지만 사실 음식은 미리 예방하는 약이나 다름이 없다.
천천히 한 끼 식사를 하고 나서 다시 앞의 건물로 이동을 해서 다과상을 먹어본다. 계절과일로 수박이 나오고 감자경단과 산사화채가 곁들여졌다.
점점 먹는 배달음식과 같은 한 끼의 식사가 간편해지고 밀키트등이 나오고 패스트푸드등이 일상화된 이때에 우리는 어떤 의미를 먹고 마시는지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한 끼의 식사가 사람의 마음에 어떤 메시지를 줄지 다음 한 끼에 조금은 마음을 담아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