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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Jun 10. 2023

노동의 의미

지금의 노동시장은 왜곡될 수밖에 없다. 

부모가 아무리 돈이 많다고 하더라도 사람에게는 일이 필요하다. 매일 한량처럼 살아갈 수는 있지만 그것이 천직이 아닌 이상 쉽지가 않다. 그리고 보통 대부분은 사람의 생계, 생존이라던가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노동을 해야 한다. 요즘은 노동에 대한 관점을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것도 사실이다. 한국의 노동시간은 OECD국가 중에서 길기로 잘 알려져 있다. 최저임금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한 사람의 생산력을 거론하지만 어차피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생산력 격차는 벌어질 수밖에 없다. 개개인이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지만 기업에 따라 자동화, 시스템화된 비율에 때라 1인당 생산율은 차이가 난다. 예를 들어 인형눈을 빨리 붙일 수 있는 전문화된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치자. 죽어라고 해도 반도체공정에 의해 만들어진 고품질의 메모리 하나의 가치에 미치려면 역부족이다. 


지금 외국인 노동자에 대해 많이 언급의 되고 있다. 한국사람들이 일을 하지 않는 분야에 외국인 노동자를 투입해야 되는데 기간이라던가 방식에 따라 문제가 드러나고 있다. 외국인 노동자가 필요한 분야는 단기적이며 지속적이지 않고 미래를 바라볼 수 있는 일자리가 아니며 심지어 힘들기까지 하다. 미국인이나 유럽인들이 그런 일자리에 와서 일하는 경우는 거의 본 적이 없다. 한국보다 못 사는 나라의 사람들이 와서 일하고 그 돈을 가지고 자국에 돌아가면 중산층의 삶을 꿈꿀 수 있지만 한국인들은 그렇지 못하다. 


한국인들을 탓할 것이 못된다는 의미다. 물론 힘든 일을 좋아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런 일자리에서 일할 수 있는 것은 남성들이다. 식당이나 농업등에서 여성이 필요한 분야도 있지만 대부분의 일자리는 남성이 해야 하는 일들이다. 그런 남성을 기꺼이 반려자로 선택할 여성이 한국에 얼마나 있을까. 미래도 없고 사회에서 그 지위가 낮게 바라보는 위치에 있는 그런 일자리를 기꺼이 선택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외국인들은 그런 시각에서 벗어날 수 있다. 자국에 가정이 있는 외국인들이라면 더욱더 그렇다. 그들은 한국 사회의 그런 시각에 좌지우지되지 않을 수 있다. 


어차리 이런 노동시장의 왜곡은 이제 피할 수 없게 된다. 노조가 있는 기업의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자리를 굳건히 하기 위해 더 폐쇄적으로 변할 것이다. 노동은 결혼이나 출산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제도권 내에서 일자리를 구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 시장은 항상 제한되어 있다. 자랑스러운 한국의 기술로 인해 더 많은 공정이 자동화될 것이고 굳이 자동화할 필요가 없는 것들은 사회에서 가장 힘든 일자리들이며 생산성이 그렇게 높지 않아도 된다. 길거리에 있는 폐지를 자동으로 수집하여 이동하는 로봇 같은 것은 만들 수는 있어도 세상에 필요가 없다. 


빈센트 반 고흐는 빈곤한 프랑스 농민의 고단한 일상을 그린 장 프랑수아 밀레의 작품을 모사하면서 자신의 실력을 키웠다. 19세기에 산업화로 인한 급격한 도시화에 지쳐 자연을 갈망하고 자연 속의 안식을 찾기 위해 많은 화가들이 시골 풍경을 그렸다. 얼마나 아름다운가. 노동을 하고 그 대가에 감사하는 그 농민들의 모습은 성스럽기까지 하지만 거기까지다. 아마 현대사회를 사는 사람 중에 그 성스러운 활동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많지가 않다. 


밀레의 그림 중에 씨 뿌리는 사람이라는 작품이 있다. 한국에서는 절대 볼 수가 없는 장면이다. 밀은 그렇게 뿌려도 자라나지만 쌀은 그렇게 뿌리면 거의 자라지 않는다. 만약 외국인 노동자로 우크라이나 사람이 들어왔는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쌀을 주었다면 그렇게 미친 사람처럼 뿌리고 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평범한 노동자의 존귀함, 자연의 순환과 힘, 소박한 삶 같은 것은 그림에서나 만족해야 한다. 


노동시장을 균형적이고 정상적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많은 것이 바뀌어야 한다. 우선 대학의 학벌이 모두 사라져야 하며 굳이 대학을 갈 필요를 없게 만들어야 한다.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가지게 하되 장벽은 제거해야 한다. 모든 업종을 불문하고 무언가를 담보로 파업을 하는 것을 막을 수 있어야 한다. 권리라는 것은 행사할 수 있게 해 주 돼 전산업의 공평성을 맞춰주어야 한다. 기업 역시 모든 것이 투명하게 공개되어 임금의 차가 최소화될 필요성이 있다. 그렇다면 노동시장은 아주 균형적으로 유지될 것이며 결혼과 출산, 자산의 불균형도 해소가 되겠지만 그럴 일은 없다. 어차피 왜곡된 대로 살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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