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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Jun 13. 2023

플래시

엉성하고 실수 많았던 과거의 나도 자신이다.

제대로 된 물리학자라면 가장 싫어하는 질문은 바로 시간이다. 시간의 본질은 무엇입니까라고 묻는다면 물리학자는 답을 하기가 힘들다. 세상에서 가장 힘든 질문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시간이 일정하게 흘러가고 나이 먹고 과거를 그런 방식으로 기억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기억하는 것 중에 진실된 것이 얼마나 있을까. 사람의 뇌는 신기하게 자신에게 불리한 것을 왜곡해서 끼워 맞춰 기억을 한다. 때론 불행한 것도 행복한 기억이 되고 행복했던 기억은 그냥 별 볼 일 없었던 것으로 치부되기도 한다.


현재의 나를 위해 과거의 기억을 왜곡시키면 현재의 나 역시 왜곡이 된다. 당연히 미래의 나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있는 그대로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때론 흘러 보내야 할 것은 흘려보낼 수 있어야 성숙해질 수가 있다. 과거의 나를 기억하는 조금은 현명해진 내가 과거로 돌아가서 했던 잘못 혹은 선택을 바꾸어주려고 한다고 바뀔 수가 있을까. 아무리 미래에 내가 지금의 나에게 찾아와서 이런 선택을 하라고 한다 해서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 만약 자신과 똑같은 모습의 사람이 와서 자신의 과거를 이야기하면서 신뢰를 얻는다 하더라도 해야 하는 실수는 해야 한다. 그것이 시간이 가진 본질이다.

DC코믹스가 달라지고 있다는 것은 이번 플래시를 통해 보게 된다. 압도적인 힘을 가지고 정의를 구현하던 캐릭터들의 전형에서 벗어나 우리 모두 잘못될 수 있다는 것을 영화에 녹여내고 있다. 그때의 잘못된 선택은 지금의 옳은 선택이 되고 그때의 옳은 선택은 하지 말았어야 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정치인들의 말 바꾸기가 타당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이런 영화를 보아도 느끼는 것이 없는 사람들이니 말이다.

슈퍼맨, 원더우먼, 배트맨에게 우선순위에서 밀려서 가장 궂은일을 도맡아 해결하는 플래시는 어느 날 가능한 자신의 능력으로 최대한 빨리 달리면 빛의 속도를 넘어설 때 시공간 이동이 가능한 것을 알게 된다. DC코믹스 시리즈 중 가장 현명한 배트맨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를 잃고 아버지도 누명을 쓰고 있는 현실을 바꾸기 위해 과거로 시간을 역행해 이동하게 된다. 단지 토마토깡통 하나 때문에 말이다. 돌아간 그 시대에서 자신의 약간 어렸을 적의 모습을 보게 된다. 어설프고 실수 많이 하고 어딘가 모자란 자신의 모습을 바꾸려고 하지만 그 역시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게다가 강력한 빌런들은 있지만 인간을 구해줄 메타휴먼은 모두 사라졌다. 나이 들어 몸도 예전 같지 않던 배트맨과 크립톤 행성에서 슈퍼맨이 될 칼엘보다 먼저 온 사촌누나 카라만이 있을 뿐이다.

사람은 과거의 내가 현재의 내가 같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과거로 돌아가서 만난다면 설득하기 힘든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분명히 너무나 잘 아는데 다른 사람들이 보는 그 단점을 제대로 느끼게 되는 것이다. 형제자매들이 서로를 이해를 못 하는 부분은 사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면때문일지도 모른다. 단지 몇 년 빨랐을 뿐인데도 약간 젊은 플래시와 현재의 플래시는 끊임없이 충돌을 한다.

영화 플래시를 보면서 실수하고 어설프고 남들에게 가시를 세웠던 나는 그럴 수밖에 없었던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것이라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런 온갖 실수와 잘못된 선택이 쌓여서 지금의 필자가 된 것이다. 물론 깨달은 것도 있고 어떤 것은 버려야 했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고 하더라도 지금의 필자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은 없다. 그렇지만 현재의 나에게는 과거를 기억하고 그 사람을 인정하며 미래를 바라볼 수 있는 희망은 있다. 크립토인들이 생각하는 S의 의미처럼 말이다.


ps. 영화의 첫부분에 갤가돗이 다시 원더우먼으로 깜짝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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