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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Jul 04. 2023

백제가 그린 미래

국립익산 박물관에서 만나보는 1,400여 년의 백제

국가가 지향하는 방향은 어디로 가느냐에 따라 흥망성쇠가 정해진다. 국가의 근간을 지탱하는 데에는 어떤 사랑이나 지향하는 지향점이 분명히 있어야 한다. 영원할 것 같은 국가였던 로마도 결국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대도시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다양한 기술이 뒷받침되어야 하는데 백제라는 국가가 기술의 정점이 있었던 것은 바로 부여에 도읍이 옮겨지고 익산으로의 미래를 꿈꿀 때였다. 

백제가 자리했던 곳마다 국립박물관이 자리하고 있는데 공주에 국립공주박물관이 있고 부여에도 국립부여박물관 익산에도 국립익산 박물관이 있다. 

백제 무왕(600~641) 때 창건된 미륵사지 출토 유물을 보다 안전하게 관리하고 이를 학술적으로 연구하여 미륵사 1000여 년의 역사와 신앙·생활·문화 등이 복합되어 있는 유물들의 전시를 통해 백제문화의 우수성을 알리고자 설립된 국립 익산박물관이다. 지역마다 중심이 되는 왕들이 다르다. 

보유 유물은 미륵사지 출토유물 및 자체소장 유물자료 1만 9363점을 보관하였으며 이 중 300여 점을 전시하였다. 익산에서 발굴된 왕궁리유적에는 왕궁의 담장도 있다. 궁궐을 보호하기 위해 궁장은 반드시 필요했으며 왕궁리유적 궁장은 동아시아에서 보존이 가장 잘 된 왕궁 담장이라고 한다. 

익산은 부여와 다른 형태의 유적이 남아 있다. 고대 익산의 역사적 가치를 가장 잘 대변하는 곳이 바로 왕궁리 유적이라고 한다. 왕궁리 유적에는 높은 담장과 정전급의 대형 전각건물, 정원과 후원, 유리. 금. 은. 동 제품공방, 대형 화장 시름이 터가 잘 남아 있다고 한다.  

이곳에는 왕궁에서 사용되었던 기와와 사원의 기와도 볼 수가 있다. 하트 모양 연꽃무늬수막새는 두 유적 각각에서 출토된 백제 수막새 중 40% 이상을 차지하고 있어 왕궁의 수막새라고 부를만하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가장 필요한 것은 상하수도도 있지만 화장실에서 오수를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있다. 왕궁리 유적의 북서쪽에서는 삼국에서 가장 큰 화장실터가 있었다고 한다. 구덩이에 분뇨가 차는 동안 어느 정도 자정이 이루어지고 일정 높이에 이르면 연결된 물길을 따라 성 박으로 배출되는 오늘날의 정화조와 같은 월리였다고 한다.  

국가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결국 세금이 필요하다. 국가예산이 어떻게 걷고 쓰이느냐에 따라 국가와 백성의 흥망성쇠가 같이 결정되게 된다. 백제의 문화는 잘 관리된 이유와 전쟁을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은 국력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익산에 왕궁리를 조성할 때 백제는 율령을 시행하고 전국을 5방으로 나누어 군과 성단 위로 하위 행정구역을 두었으며 관등을 가진 중앙정부 관료를 파견하였다고 한다. 

대왕릉의 나무 널은 1917년에 대왕릉 돌방 안에서 수습한 것이라고 한다. 문화재 연구소의 분석에 의하면 대왕릉이 주인을 무왕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고 한다. 

백제는 1,400여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었지만 지금은 사라졌다. 백제가 남긴 고도의 통치기술과 정치 감각은 오늘날에도 화자 되고 있다. 오래전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국가의 힘을 보여주기 위해 많은 예산을 사용했다. 이집트의 피라미드, 파리의 에펠탑, 미국의 엠파이어 스테이트빌딩등은 고대의 거대한 유적과 다를 것이 없다. 백제 무왕과 그의 부인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던 미륵사지의 석탑처럼 우리는 미래에 어떤 기억으로 남겨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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