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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Jul 25. 2023

정읍의 이순신

전라좌도 수군절도사전에 머물렀던 정읍시

여흥민 씨 집안은 역사 속에서 많이 등장하는 유력가문이다. 조선시대 유력가문이라고 하면 왕비를 배출한 집안이기도 하다. 정읍이라는 도시는 여러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곳이기도 하다. 대표적인 사람으로 이순신과 영조의 어머니이며 장희빈과 대립각을 세웠던 숙빈 최 씨다. 조선 숙종 때 민유중(閔維重)이 영광(靈光)으로 부임하는 도중에 정읍의 대각교를 지나다가 잠시 쉬게 되었다고 한다. 이때 다리를 지나는 거지 같은 차림의 소녀가 있었는데 부모와 사별하고 갈 데가 없는 소녀를 데려가 예절과 글을 가르쳤는데 그녀가 입궁했다가 숙종의 사랑을 받아 숙빈이 되었다. 

정읍의 행정중심이기도 한 정읍시청의 바로 옆에는 충무공원이 자리하고 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몇 년 전인 선조 22년(1589)에 충무공 이순신은 정읍 현감으로 부임을 하게 된다. 이곳에서 근무하던 이순신은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1년 전인 선조 24년(1591)까지 이곳에서 근무하다가 전라좌도 수군절도사가 된다. 

백일홍이 피어나고 있어서 이순신을 기린 충무공원의 색채를 더해주고 있다.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국가의 운명이 풍전등화에 이르렀어 때 수많은 해전에서 왜군에게 승리를 거두었다. 그렇지만 이순신은 마지막 전쟁이기도 한 선조 31년(1598) 11월 19일 노량해전에서 총탄을 맞고 54세로 운명하게 된다.  

래 이곳에는 일제강점기에 신사가 있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은 자신들의 역사를 새롭게 만들려고 했다. 일제가 신사참배(神社參拜)를 천황을 신의 반열에 올려 역사의 전통성을 확장해나가려고 했던 것이다. 

신을 모신 신사에 기도하는 의식이자 일제강점기 때 일본이 조선인들에게 강제로 행하면서 종교로서 출발한 국가신도에서 종교적 색채를 제거하고 이를 전 국민적인 보편이념으로 정착시키기 위한 정책의 일환이었다. 예를 들어 어떤 지도자가 기독교를 국민적인 보편이념으로 정착하기 위해 강제로 교회에 가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쉽다. 

신사가 있었던 곳을 이순신을 모시는 곳으로 사우를 건립하고 충무공 이순신의 영정을 봉안하여 충렬사라고 부르고 오늘에 이루고 있다. 

정읍시로 승격하게 된 것은 1995년에 시였던 정주 시와 정읍군이 도농통합에 따라 새로운 정읍시가 된 것이다. 봄이면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이곳 충무공원은 홍살문을 지나면 문루 누각인 선양루가 있으며 선양루를 거쳐 계단을 오르면 1985년에 건립된 효충문이라는 외삼문을 지나면 정면에 충무공 이순시느이 영정과 위패를 모신 정면3칸, 측면 2칸 규모의 사우가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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