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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Jul 27. 2023

근대의 역사탐방

수탈과 고통의 시대를 살아간 정읍의 흔적들

아무리 시대가 달라졌다고 하더라도 바뀌지 않는 것들이 있다. 사람의 본성이라던가 부의 격차, 정치의 실종, 침략, 수탈, 일부 계층의 고통등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동학농민운동은 가장 근대적이며 자주적인 백성의 운동이기도 하다. 동학농민운동으로 인해 삼일운동도 가능한 것도 사실이다. 더 이상 왕조사회가 자신의 삶을 나아지게 해주지도 않고 개선될 것도 없었던 그 시기를 스스로 개척해 나가려는 운동이기도 했다. 

정읍이라는 지역을 연상하면서 생각나는 키워드를 꼽으라면 동학농민운동, 쌍화차, 구절초다. 전북 정읍시에 가면 고부면이라는 지역이 있다. 고부면은 바로 동학농민운동이 처음 일어난 곳이기도 했다. 동학농민운동은 일제를 이 땅에 들어오게 한 구실이 되었다. 일본인들은 일제강점기에 수많은 일본인들을 이 땅에 들어오게 한 다음 강제적으로 땅을 수탈하여 가지게 해 주었다. 

쌀이 많이 생산되던 곳이나 쌀을 실어 나를 수 있는 항구가 있는 곳에는 일본인들의 적산가옥이 많이 만들어졌다. 일본인들은 자신들의 삶을 그대로 이어나가기 위해 일본에서 자재를 가져와서 집을 지었다. 정읍에도 남아 있는 적산가옥들이 있다. 

정읍에는 구마모토 사택과 농산과장 사택이 있다. 목조를 기반으로 전형적인 일본인들의 집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 여행지로 잘 알려진 일본의 구마모토는 관동대지진이 일어난 곳이기도 하다.  일본 경시청이 "조선인이 폭동을 일으켰다"는 허위 소문을 퍼뜨리고 이를 근거로 계엄령을 선포했다. 이 과정에서 일본 군대·경찰·자경단(自警團, 퇴직경찰)에 의해 6000여 명의 조선인과 일본인 사회주의자가 학살된 관동대학살은 대지진이 일어난 직후인 1923년 9월 1일 시작됐다. 

전북지역 최대의 지주가 된 구마모토는 1902년 화호리에 진출하였다. 이곳의 명당자리에 사택과 창고 등을 설치하여 정신적, 물질적으로 하호리 주민들을 수탈하였다. 그의 농장은 정읍, 김제, 옥구, 익산, 부안 26개 면에 걸쳐 있었으며 무려 3,500 정보에 달했는데 보이지도 않을 정도의 농지라고 보면 된다. 

정읍에는 적지 않은 근대문화유산이 남아 있다. 일제강점기 당시 일반 대중의 삶을 보여줄 수 있는 농촌으로 실제 가장 많은 고통을 받았던 것이 농촌이다. 

사람이 책을 읽고 역사를 공부하는 것은 그 본질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함이다. 깨어있는 사람은 쉽게 물들이지 못한다. 일본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한국민족말살정책에서 사회경제적 수탈뿐만이 아니라 정신을 말살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매주 토요일 정읍역 앞에서 출발하는 정기투어는 정읍의 자랑이자 사계절 아름다움을 간직한 내장산과 세계유산인 무성서원, 우리나라 민주주의 시초인 동학농민혁명기념관과 전국 유일의 정읍쌍화차거리 등 시내투어로를 해볼 수가 있다. 

정읍의 도시기본계획은 2040년을 기반으로 새롭게 수립이 되었다. 도시기본계획은 도시의 미래상과 공간구조, 장기발전 방향을 제시하는 종합계획으로 도시관리계획 수립의 지침이 되는 도시계획의 최상위 법정계획이다. 정읍시의 경쟁력 강화와 중심지별 자족성 마련을 목표로 '1 도심 4 지역 중심 2 특화 핵'으로 도시기본계획을 재편해 생활권별 발전방향과 구상을 세워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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